왜 학교에선 이런 걸 안 가르칠까
어릴 때부터 다 같이 배우면 참 좋을텐데.
언젠가 자식이 생겼을 때, 내 마음대로 크길 바란다면 망상이겠지.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도 없으니 현실적인 욕심을 갖자. 한 손에 꼽을 정도의 바람을 정해 그만큼만 잘 달성해보는 걸로. 그런데 그 귀한 자리에 뭘 둬야 할지?
멋진 (그리고/또는) 무서운 남에게 판단을 위탁하지 말고, 자기 머리로 깊게 생각하고 온전히 책임지며 나아가야 해. 운동의 재미와 가치를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야 배운 나보다는 일찍부터 몸을 가꾸길 바라. 춤, 악기, 노래, 글, 요리 그 외 무엇이든 – 언제든 꺼내들 창작과 표현의 도구를 하나쯤 마련해둔다면 든든할 거야… 어렵게 배운 교훈을 통해 모아온 짤막한 목록에 최근 추가된 항목: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높은 해상도로 읽을 줄 알길. 사람도 그렇지만 세상 많은 콘텐츠가 빙하 같더라. 언뜻 흘겨보면 딱 그만큼만 보이는데, 사실 물 아래 뭐가 많더라고. 표면 아래 감춰진 깊이가, 쓰여진 문장 아래 서브텍스트가, 작품 뒤에 예술가와 그의 의도가 있다는 걸 알고 바라보면 있는 줄도 몰랐던 뒷장이 궁금해질 거야. 궁금해할 줄만 알면 들춰 볼 수 있어.
앨범의 흐름을 따라가며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전환에 전율하고, 같은 곡을 수십 수백번 듣고 비로소 숨어 있는 악기를 하나씩 발견한다던가.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내달리는 대신, 책장을 덮고 눈을 감고 단어 하나마다 곱씹으며 장면을 머리 속으로 그린다던가. 한 마디 대사 없이도 이미지, 사물, 음악과 컷의 전환으로 건네지는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도록 주파수를 맞춘다던가.
나는 읽는 데 그 많은 시간을 쓰고도 이걸 엄청 늦게 배웠어. 음악 감상을 취미 삼은지 십 년도 넘어서야 멜로디랑 가사 밖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스물 중반이 넘어서야 영화도 소설도 몇 문장으로 요약될 줄거리를 넘어선 것들을 가졌음을 알았지. 알고 나니 세상이 훨씬 크고 깊어지는 걸 느끼며, 왜 이리 늦었을까 아깝고 분하더라. 부디 볼 줄 아는 눈과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
아니 근데 생각하다보니까 이런 걸 꼭 집에서 가르쳐야하나? 누구나 알면 훨씬 더 삶이 풍부해질텐데? 개인의 삶이 다채로워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에도 중요한 영향을 줄 것 같은데? 애초에 왜 학교에선 이런 걸 안 가르칠까…’
샛길로 뻗어나가는 의식의 흐름을 쫓던 중 불현듯 깨달았다.
이거 이미 학교에서 완전 가르치고 있잖아..? 나도 분명 배웠는데?
충격과 함께 식은 땀이 살짝. ‘이 글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주제는 이것이다’, ‘여기 나오는 감자와 저기 나오는 촛불은 이런 의미를 갖는 상징들이다’, ‘이 글은 형식이 어쩌구, 저 글은 표현이 저쩌구’…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먼저 배운 과목 몇이 이 얘기 하고 있었네? 꼬박꼬박 시험도 쳤었네?
심지어 우리 엄마는 어린 나와 친구들을 모아 직접 글쓰기를 가르쳤고, 부친은 나 어릴 적부터 어디서 구해온 프로젝터, 스피커로 집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틀어줬는데. 아티스트들의 인터뷰에 흔히 등장하는 예술하는 부모만큼은 아니어도, 이 정도면 우리 양친이 준 인풋도 적지 않은데, 그 결과가 (고작) 나였다니… 한 번 더 깨달음:
가르쳐서 그나마 이만큼인 건가? 생각보다 어렵구나?
이미 학교에서 잘 가르치고 있다는 짧은 안도감에 곧바로 뒤따르는, 공교육은 물론 집에서까지 이어진 가르침에도 나는 서른이 다 되어 깨달았다는 절망감. 그 절망감에 굴복할 수 없어 머리를 굴리다보니, 가르치고 배워온 방식이 문제였나 싶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주제로 시험 쳐 점수 매기고, 자기 머리로 부딪히는 대신 안전한 남의 생각을 외우게 하니까. 그런 식으로 되겠냐고.
그렇게 생각하니 희망도 보이는 듯. 사실 나도 누가 가르쳐줘서 이런 재미를 알게 된 게 아니지. 오히려 이걸 무슨 커리큘럼을 짜서 가르친다는 발상이 우습기도 해. 내 역할은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까지고,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내가 내 세계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니려나.
언젠가 자식이 생겼을 때, 함께 열심히 즐기고 서로 좋아하는 걸 소개하며 자극을 주고 받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답을 떠드는 대신 궁금해하는 법을 알려줘야겠다. 그리고 궁금해진 것들에 대해 남의 정답 따위 신경쓰지 말고 마음껏 틀리면서 세상과 자신을 (또다시) 알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때론 조용히, 때론 시끄럽게 함께 해야겠다. 아… 재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