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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라쥬 드 아난티

    원한다면 언제든 빌라쥬 드 아난티에 묵을 수 있는 삶은 어떨까.

    2026년 9월 13일
    #에세이

    빌라쥬 드 아난티 건물

    1.
    원한다면 언제든 빌라쥬 드 아난티에 묵을 수 있는 삶은 어떨까. 아무래도 그렇지 못할 때보단 더 행복할까?

    2.
    6년 근속으로 받은 3주 유급 휴가가 끝났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나트랑, 배우자와 후쿠오카, 양가 가족과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마지막 부산에선 빌라쥬 드 아난티라는 고급 숙소에서 묵었다. 회사에서 휴가와 함께 제공해준 2박 3일 숙박권 덕이었다.

    방과 거실 모두에서 보이는 기장 바다와 용궁사 전망은 기가 막히고, 침구와 어메니티는 하나같이 깔끔하면서도 포근했다. 너무 많아 별도의 안내 지도가 필요하던 실내 및 야외 수영장은 살면서 가본 개중 가장 넓고 관리가 잘 돼 보였다. 로비, 방, 복도까지 하나같이 층고는 높고 공백도 충분한 공간에 내 마음도 넉넉해지는 듯 했다.

    첫 날은 배우자의 동생 부부, 둘째 날은 내 양친을 초청해 함께했다. 그들도 즐거워했다. 엄마는 몇 번이고 말했다. “정말 숙소가 너무 좋다, 우리 앞으로도 같이 이런 데 더 자주 다니자.” 물론 아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안 좋겠냐만은– 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 말을 들으니 마음 속 뭉근하게 끓던 불편함이 형체를 갖추고 떠오른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곳에 더 자주 다니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이 정도는 부담 없이 누릴 수 있게 ‘더 열심히 사는’ 삶이 내게 맞는지 고민되고, 여기서 좋았던 순간마다 한편으론 동시에 묘한 씁쓸함이랄지 불안함, 뛰쳐나가고픈 기분을 느꼈다고.

    그러나 좋은 마음으로 던진 말에 이런 답은 내가 생각해도 영 이상한 반응이라, 웃으면서 말을 슬쩍 돌려본다. 복잡한 속과는 무관하게 기뻐하는 부모를 보니 나 또한 기쁘다.

    3.
    첫날엔 짐을 풀자마자 하진과 주된 야외 수영장을 찾았다.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각인데다 세찬 바닷바람 덕에 쌀쌀했지만, 막상 물 속에서 움직이다보면 몸이 금세 더워졌다. 그럼에도 첫 발을 담글 때만큼은 아찔할만치 차가워서인지, 단지 평일이어서인지 사람은 거의 없어 넓은 수영장을 둘이 전세 냈다.

    눈 닿는 풍경마다 예쁘고 방만하다. 멀리 기장 바다에서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바스라진다. 해질 무렵 수평선 위는 보랏빛으로 물들고, 구름은 누군가 길게 찍어둔 말줄임표처럼 비슷한 높이에 점점이 줄 서 있다. 배영하듯 누워 바라본 하늘엔 간격을 두고 우뚝 선 매끄러운 흰색 건물들 사이로 까마귀떼가 날갯짓하며 알 수 없는 무늬를 그린다.

    입술이 퍼래질 때쯤 나와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 방에 돌아오는 길, 단지 내 건물을 하나씩 둘러본다. 문을 닫은 베이글 가게는 메뉴가 참 다양하다. 매점엔 식료품은 물론 ‘대체 여기서 이런 걸 사는 사람은 누구지’ 의문이 들만큼 러그, 접시, 올리브유까지 온갖 물품이 구비되어 있다. 의외로 충실한 서적 코너 구성에 잠깐 놀란다.

    호텔 건물 일 층 브런치 가게도 오늘 영업은 마친 시각. 내일 아침을 여기서 먹을까– 메뉴판을 보니 커피가 만 원이 넘고 브런치가 삼사만원. 잔인한 범죄 현장 사진이라도 본 양 빠르게 고개를 돌린다. “방에 캡슐 커피가 있던데 아까 베이글 사서 그거랑 먹자!” 공범이 된 듯한 웃음을 나누며 걷는다.

    저녁바람은 딱 좋을만큼 서늘하게 서걱거려 기분 좋게 피부를 간지럽힌다. 여긴 뭐랄까 한 마디로, 참 쾌적하다.

    다른 지점들은 어떨지 궁금하고, 이번에 못 온 장인 장모님, 동생도 데리고 와보고 싶다. 회원권 가격을 찾아본다. 억이 넘네. 그런데도 방값은 몇십씩 또 따로인데다 그마저도 예약이 힘들다니. 예전에 친구가 이야기한 비슷한 컨셉의 하이엔드 별장 회원권, 그건 얼마더라? 아 얘도 비슷하구나.

    4.
    나는 달콤한 상상에 빠진다.

    억이 넘는 돈을 박아 두고도 일박에 몇십쯤 아무렇지 않게 내는 삶에 대하여. 이 수영장과 숙소가 늘 손닿는 곳에 있다면 얼마나⋯ 안락할까. 여기까지 와서 배달시킨 저녁을 받으러 주차장까지 걸어나가는 대신 룸서비스를 양껏 시켜먹는 풍족함, 바깥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 찍힌 메뉴판 앞에 주저없이 카드를 내미는 산뜻함에 대한 공상.

    이러한 상상은 – 내가 자주 그러하듯 – 달콤한 채로 끝나기 전 옆 길로 샌다. 그러한 삶을 위해 치룰 대가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장기 근속과 황금 (혹은 황동) 수갑, 낯선 이들과 널뛰는 숫자가 선사할 끊임 없는 스트레스, 복종과 삼킨 말과 감은 눈 따위에 대한 재잘거림으로.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들 한다. 가격표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삶에 붙는 가격표엔 무엇이 적혀 있으려나.

    아난티 코브 수영장 계단에서

    5.
    삶의 궤적마다 찍힌 점들은 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연결된다.

    나는 무언가를 얻자마자, 또는 얻기도 전부터 그걸 유지보수하기 위한 비용부터 고민하는 게 익숙하다. 아무래도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시절에 본격적으로 내 동작 원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습관인 듯 하다. 일터에서 적용하고자 하던 원칙이 일터 밖으로 넘쳐흐른 셈이다.

    물론 이러한 습성은 프로그래머라는 직군보다는 실은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정말 복잡하고 어렵고 수십가지 방식으로 잘못될 수 있지만 엄청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일에 본능적으로 더 흥미를 느끼고 덤벼드는 동료들도 늘 있었으므로. 단지 내가 천성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끌리지 않았던 것 뿐이다.

    시간이 갈 수록 물건을 살 때도, 관계를 늘릴 때도 – 단순히 처음 구매할 때의 가격을 떠나 – 자신에게 자주 묻는다: ‘이걸 가꾸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기꺼이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 진정 드는가.’

    답하며 살다보니 어느새 강제적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6.
    지난 삼사년, 나의 머리 한 구석엔 이러한 단어들이 얼기설기 얽힌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소시민성. 야망의 크기 (보다 정확히는 야망의 부재). 적당함. 좁지만 고요한 울타리.

    나는 ‘당연히’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져야 하는가? 삶은 살아있는 한 누구에게나 투쟁과 전진이어야 마땅한가? 어릴 땐 다른 가능성이 있으리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다. 나이를 먹으며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단 마음이 새싹 돋듯 고개를 쳐들지만, 정작 그렇게 답하려 할 때면 왠지 모를 수치심이 느껴진다.

    또한: 물건이든, 음악이든, 음식이든, 인테리어든⋯ 무엇이 진정 좋은지 알게 되고, 자연스레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민감하게 구분하는 (구분할 수 밖에 없는) 안목은 과연 개인에게 축복일까? 혹은 그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어떤 상황들이 누군가에겐 저주로 작용할 수도 있을까.

    7.
    몇 달 후엔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그걸 생각하니 문제가 조금⋯ 아니 더 많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너에게 충분한 것이 너의 아이에게도 충분할 것이냐? 그렇지 않다면 어쩔 셈이냐?

    너의 아이를 위한다면 늘 더 많이, 더 좋은 것만을 주려 해야 할 것이냐? 그러나 더 많이, 더 좋은 게 무엇인진 누가 정한단 말이냐?

    부모와 함께 수영하는 저 해맑은 아이들을 보라. 네 아이에게도 저 나이 때 이런 추억들쯤은 선사할 수 있어야 멋진 아빠라고 할 수⋯ 있으려나⋯?

    8.
    2019년엔 소셜 미디어에 “인생은 계단이 아니라 벌판이다– 라고 믿기로 했다.”라고 적었다. 2021년에 같은 문장을 조금 더 늘여 『계단과 벌판』 이라는 글로 적었다.

    (⋯) 인생이 계단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올라가거나, 정체되거나, 떨어지는 것 뿐이다. 정체되거나 떨어질 수 없으니 어떻게든 위로 한 발짝 또 떼고 나면 땀 한 번 닦고 그 다음 단을 오르기를 언젠가 더 이상 못 오르는 순간을 만날 때까지 반복하는 일.

    하지만 인생이 벌판이라면 우리는 가만히 누워 구름 흐르는 걸 바라보고, 취해서 춤 추고, 고양이와 낮잠도 잘 수 있다. 가끔 계단도 오르겠지만, 언제라도 내려와 쉴 수 있고, 사실 세상에는 수많은 계단이 존재하며 무엇을 언제 어떻게 오를지는 오롯이 내 선택일 것이다.

    다짐은 다짐일 뿐, 가끔 정신차려 보면 또 계단인 듯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세상에, (초)성장이 지상과제로 여겨지는 스타트업 업계에 몸 담고 있다보니 쉽지 않겠지만… 그 믿음이 흐려지지 않길 바란다.

    플렉스 근속 칠 년을 바라보는 시점에, 육 년 근속 장기 휴가를 마치는 글을 쓰며, 일 년 반쯤 다닌 시점에 적은 글을 들춰보고 있다. 누구에게나 주기적으로 반복해 찾아오는 주제들이 있다면 내겐 이 계단과 벌판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인지 모르겠다. 이번이 마지막도 아닐 거란 예감이 든다.

    같은 주제를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으면서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못 낸 듯한 자신이 사실은 다소 한심하다. 다를 바 없는 원만 반복해 그리는 듯 보이는 궤적이지만, 고개를 꺾어보면 실은 조금씩 위로 나아가는 나선일까? 그러길 바랄 수 밖에.

    원한다면 언제든 빌라쥬 드 아난티에 묵을 수 있는 삶은 어떨까. 아무래도 그렇지 못할 때보단 더 행복할까?

  • 『1000xRESIST』

    꼭 한 번 시간을 내서 플레이해보길 강하게 권장(부탁)한다.

    2026년 9월 3일
    #리뷰

    1000xRESIST

    『1000xRESIST』는 일국양제와 2047년, 거대한 붉은 억압자, 우산 혁명과 홍콩 민주화 운동, 천 번의 저항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는 트라우마, 부모와 딸과 딸의 딸과 딸의 딸의 딸, 자매–복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원죄, 이념과 종교, 성전과 경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아시아 디아스포라, COVID-19와 그를 둘러싼 인종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되풀이되는 역사와 기억, 저지른 실수와 벌어진 상처, 질투와 이해, 응징 또는 용서, 어디에 선을 그어 무엇을 버리며 무엇을 안고 나아갈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열 시간 남짓한 플레이타임 안에서 얕거나 산만해지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다룬다는 불가능해보이는 과제를 달성해냈단 게 개발진의 역량의 방증이다.

    제작사 「sunset visitor 斜陽過客」는 4명의 풀타임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밴쿠버의 인디 게임 스튜디오다. 이들은 시각 예술, 춤과 연극, 작곡 및 무대 조명, 뉴미디어 아트 등 게임 개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각자의 커리어를 쌓아가며 만난 사이다. 그러던 중 COVID-19로 인해 주된 창작 및 생계 수단인 공연 기회가 사라졌다. 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선택한 수단이 게임이었다. 『1000xRESIST』는 그들의 첫 게임이다.

    이러한 팀의 역사는 결과물에 진하게 녹아들어있다. 이 게임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법을 알고 있다. 게임 속엔 “빨강이 파랑 되기를”, “여섯이 하나로”과 같은, 말버릇처럼 되뇌여지며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경구들이 등장한다. 재밌는 점은 게임 자체의 소재와 이야기 역시 그러한 수많은 해석의 방향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서브텍스트를 동작하게 하는 동력은 다음과 같다: 함축적인 대사, 챕터 별로 파격적으로 전환되는 (여러 의미의) 시점, 시공간을 깨트린 뒤 뒤섞어 내미는 비선형적 스토리텔링, 주술적으로 반복되는 앰비언트 전자 음악 등. 게임 속 마법적 순간이 게임과 무관한 개발진의 기존 배경에 기대고 있음이 명백하게 느껴질 때마다 하릴없이 감탄했다. 우리가 전혀 동떨어져있다 생각한 것들이 사실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얼마나 잦은지!

    게임 속엔 아시아계 이민자로서의 개인사, 모국에 대한 억압과 저항의 역사,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인 COVID-19, 게임이라는 매체와 스토리텔링 등의 다양한 소재에 대한 개발진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가 가득하다. 그러나 이 모두는 인류 멸망 후 마지막 남은 복제인간들의 이야기 속에서 결국 누구나 일부분 깊게 공감 가능한, 보편성을 획득한 무언가로 재탄생한다. 모두가 서로를 지지하는 동시에 받쳐내며 무너지지 않는 구조물을 엮어낸 솜씨가 경이롭다. 브라보!

    물론 장점만 있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이 게임에는 실질적인 게임 메카닉이 전무하다. 실패 상태가 (한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게이머의 행동은 대사를 읽고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며 스토리를 감상하는 게 전부다. 사건이 제시되는 순서 자체는 조각났고 비선형적이지만, 게임의 진행은 반대로 곧은 직선의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려간다. 그 외에도 대사나 길 찾기 등 소소한 편의성 문제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게임을 끝낸 후, 감탄하면서도 ‘과연 게임이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처음엔 아닌 것 같았으나, 곱씹어보며 다른 매체, 예컨대 공연이나 책, 영화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게 되었다. 일례로 이야기의 핵심 소재인 ‘교감 의식’부터가 게임을 매체로서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인 상호작용성과 정면으로 맞닿아있다. 이 이야기는 이 방식으로, 내가 직접 체험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같은 스케일을 다른 매체로 구현하려면 맞닥뜨릴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의 ‘게임성’ 부족은 역설적으로 평소에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이들에겐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원인이기도 하다. 뛰어난 컨트롤이나 전략적인 사고가 전혀 필요 없으므로 마우스나 키보드만 쓸 줄 알면 누구나 플레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리뷰가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서두에 언급한 소재들 혹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시간을 내서 플레이해보길 강하게 권장(부탁)한다. 나 역시 몇 번 더 플레이할 생각이다. 이 글에서 다 못 풀어낸 감상을 친구들과 열심히 떠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 『파반느』

    지금껏 너무 좋게 보아서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컨텐츠에 대해서만 썼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험도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2026년 9월 1일
    #리뷰

    크레딧이 올라갈 때, 여운이 남거나 또 보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왜인고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끝까지 본 후에도 딱히 요한, 미정, 경록이라는 세 인물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영화가 던져주는 정보들이 없지는 않다. 허나 이는 영화 내의 등장인물 아무개 역시 그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파악할 수 있었을, 인간의 지층 중 상대적으로 표면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게 아닌 심층에 어떤 무늬가 기록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 기분이다.

    그 힌트일 수 있는 각 인물별 전사, 설정, 사건들이 제시되지만, 마치 소설의 ‘인물 소개’ 섹션에 소개된 짤막한 문장들처럼 그냥 툭 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스가 잘 묻지 않고 면과 따로 노는 파스타처럼.


    지금껏 너무 좋게 보아서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컨텐츠에 대해서만 썼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험도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나의 불호가 정확히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그 불호가 작품에게 과연 정당한지 검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추후 생각이 바뀐다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 떠날 준비, 돌아가며

    바다를 건너서, 하늘을 날아서⋯

    2026년 8월 26일
    #에세이

    식기세척기 마른 그릇을 꺼내 서랍장에 쌓아넣는다. 싱크대를 솔질한다. 냉동실 얼음틀을 꺼내 물을 붓고 얼음을 얼린다. 재활용 쓰레기를 비운다. 반도 안 찼지만 음식물 쓰레기도 버린다. 더운 날에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나니까.

    ‘타월’ 모드로 세탁 후 건조시킨 수건을 차곡차곡 개켜 욕실 서랍장에 넣는다. 세면대 거울 앞 흐트러진 로션 통과 머리핀, 오일이 널브러지고 자꾸 떨어지는 게 거슬려 주방에서 쓰던 바구니를 하나 비운 뒤 화장실로 가져와 정리해 담는다. 다 쓴 치약을 버리고 새 치약으로 바꿔두려 창고를 뒤지다 못 찾고 포기한다.

    고양이 화장실에서 삽으로 배변을 퍼내 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혹시 그 새 또 초파리가 생기거나 알을 까진 않았는지 체크한다. 책상 아래 하나, 옷방 거울 옆 하나 고양이 정수기 케이블을 빼내 물을 새로 한 번 갈아준다. 부엌 서랍장 아래칸 사료 포대를 꺼낸 뒤, 고양이 사료통으로 쓰는 밀폐용기를 채워넣는다.

    새로 산 매트리스가 왔다. 이불 커버와 베개 커버를 꺼내 ’침구’ 모드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연달아 돌린 뒤, 베개와 이불에 씌우고 시트를 매트리스 위에 덮는다. 이틀간 충분히 환기 시킨 뒤 방수 커버를 씌운다. 침대를 샀던 집 근처 매장에 방문해 눈독 들였던 새 베개를 주문한다. 침실 바닥, 하는 김에 거실도 진공 청소기를 한 번 돌린다.

    건조기에 있는 그녀의 빨래를 꺼내 책상 위에 종류별로 개어둔다. 빨래를 올리다 보니 책상에 똑같이 생겨서 맨날 헷갈리는 USB-C 케이블 – 하나는 충전기, 하나는 모니터 – 이 눈에 밟힌다. 충전기 쪽 케이블에 종이 테이프를 감아 표시해둔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나트랑으로 놀러 왔다. 한 때 무척 친했던 사이가 많이들 그러하듯 특별한 이유 없이 각자의 삶이 바빠지며 멀어졌지만, 24년 초 정기적으로 등산을 같이 다니면서부터 다시 자주 보고 있다. 모임에서 세부, 제주도, 속초 등 몇 차례 여행을 다녔는데 이번 여행이 개중 가장 긴 일정이다.

    긴 여행은 곧 배우자를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날이 길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같이 살기 시작한 이래 하진은 학회 때문에 일주일 남짓 해외에 나갔던 적이 있지만, 내가 이 정도로 오래 비운 적은 처음이다. 임신한 상태라 더더욱 그렇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혼자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 역시 늘었다.

    그런 마음을 보상하려는 양, 이삼일 전부터 떠날 준비를 했다. 집에 혼자 있을 하진의 하루를 상상하며, 뭔가 필요하거나 미세한 턱에 걸릴 상황을 하나씩 그려보며 그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덜 외롭게 만들 방법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할 일은 많고 시간도 잘 갔다.

    준비를 하다문득 생각했다. 고작 오 일 집을 비우는데도 이렇게 챙겨야 할 게 계속 떠오르는구나. 내가 만약 먼저 죽는다면 그 때는 어떨까. 며칠은 커녕 남는 이들의 여생을 생각할텐데, 아무리 해도 그 준비가 끝나지 않겠구나. 바구니로 바닷물을 퍼내야 하는 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생각을 하니 서글프다. 그따위 준비는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대에게 시키고 싶지도 않다.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나쁜지 선택이 불가능한, 오답 뿐인 질문처럼 느껴진다. 머리 속에서 생각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와 조금도 상관 없게도 우리 중 누군가에게 그 순간이 찾아올 것을 확실하게 알기에 더 서글프다.

    그러나 바꿀 수 없다면 미리 걱정은 무의미. 떠나야 할 날이 조금이라도 덜 아쉽고 덜 후회하기 위해선 살아있는 매 하루를 충실하게, 마지막인 듯 살아가는 것 말곤 방법이 없으리라. 늘 떠날 준비를 하는 마음으로, 늘 너에게 돌아가며 살아야지, 소리내어본다. 이상하지만 묘하게 맞는 기분이 든다.

    더운 나라의 리조트는 휴양지로 더할 나위 없다. 오전과 낮에 열심히 먹고, 약간의 러닝, 헬스와 상당한 수영을 한 뒤 나른한 상태로 방에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또 언제 올지 모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만, 마음 한 구석은 이미 슬그머니 한 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바다를 건너서, 하늘을 날아서⋯

  • 집 구매기 3: 스팀덱, 유니클로 치노 팬츠와 호갱노노

    집은 안정감. 집은 갓 빨아서 갠 태양 냄새 나는 수건. 집은 고양이와 아이의 잠자리. 집은 딱 좋을 만큼만 펑퍼짐한 튼튼한 바지.

    2026년 8월 25일
    #에세이

    집 구매를 결심할 때의 마음은 이러했다:

    일이년마다 짐 싸서 이사 다니기 지겹다. 고양이 기른다고 눈치 그만 보고 싶다. 대단한 투자 수익은 바라지도 않고 ‘우리 집’이라 부를 공간을 꾸리고 싶다.

    우리는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 중인 집을 샀다. 빠르면 연말부터 이주 나가 몇 년 떠돌아야 한다. 다음 셋집 구할 땐 고양이 때문에 또 전전긍긍하겠지. 한편 일단 버티면 투자 수익은 기대해볼만 한가 싶은데.

    한 마디로 원래 생각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 셈이다. 대체 어쩌다?

    올해 초, 8월 전세 만기에 맞춰 집을 구하려던 우리는 집값이 오르는 속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부동산 앱을 보니 분당엔 이미 우리 예산으로 갈 동네가 없었다. 도시를 옮겨야 함을 받아들이고 단지를 몇 추려 부동산을 찾았다.

    사장님은 믿음직스럽던 첫인상만큼이나 추진력이 상당했다. 다음 날부터 후보를 보내시더니 사흘째 아침, 야탑에 지금 예산으로 들어갈 집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만’, 단서가 덧붙여졌다. 리모델링 단지라 공사하는 삼사년은 집을 비워야한다고. 국민 평형이 되는 집은 분담금까지 하면 예산 초과지만, 이 매물은 작은 평수로 가는 덕에 예산 내인데 이런 집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라고.

    이건 계획과 다른데? 애초에 이사를 그만 다니려 집을 사려던 건데. 하지만⋯

    살던 집 앞단지 리모델링이 끝나가던 때였다. 누가 저 돈 주고 여길 사, 기겁했던 분양가에 팔리는 집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었다. ‘세상에 부자가 참 많구나’라던가, ‘분당 신축이 귀하긴 한가보네’ 따위의.

    그럼 리모델링 후엔 여기도 그만큼 비싸지나? 아니지, 그새 물가도 오를테니 더하겠네. 사오년 더 고생해서 애가 학교 다닐 때쯤 더 나은 동네로 옮길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하지 않을까? 월급으로 집값 못 따라잡는 건 이번에 확실히 느꼈잖아. 어영부영 망설이다 이번에도 못 사면 다음부턴 선택권조차 없을지 몰라!

    퇴근 후 방문한 단지는 번화가와 떨어져 조용하고 좋아 보였다. 전 주인이 이십몇년 산 집 상태는 여러모로 곤란했지만, 몇 달 살고 허물어진다면 큰 문제는 아니고⋯ 이게 마지막 기회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우리를 사로잡았고 이 집은 하늘에서 내려온 마지막 동앗줄인 듯 했다.

    사장님의 부추김 살짝을 곁들인 고민과 정당화 끝에 다음 날 홀린듯 가계약금을 걸었다. 조마조마한 마음 탓에 흥정은 생각도 못 하고 호가대로 사겠다 하니 사장님이 이천 오백 만원을 깎아오셨다. 호구 될 뻔 했네, 아니 지금도 호구인가, 중얼대면서도 신났다.

    한 달 후 본 계약을 위해 부동산 가는 길, 문득 얼마 전 산 스팀덱과 유니클로 치노 팬츠가 떠올랐다.

    스팀덱은 출시 때부터 사고 싶었다. 플레이스테이션에 안 나오는 인디 게임이 좀 많은가. 그럼에도 게임기가 정말 하나 더 필요한가, 과연 얼마나 쓸려나 따위 고민으로 용돈에서 조금씩 모으다 돈이 필요하면 빼 쓰길 이 년. 결국 결심하고 중고로구했는데, 막상 사고 나니 왜 이리 오래 걸렸나 싶을만큼 좋았다.

    치노 팬츠는, 오육만원 했나? 이전 바지가 찢어진 뒤 ‘하나 있긴 해야지’ 싶어 몇 달 간 대여섯 브랜드를 전전하면서 입어보고 빈 손으로 가게를 나서길 반복했다. 뭔가가 안 맞는 듯 했다. 그러다 유니클로에서 흔하지만 정확히 맘에 드는 바지를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둘 다 구매까지 오래 걸렸지만 이유가 돈은 아니었다. 살다보니 정말 내게 필요한, 딱 맞는 물건이 아니라면 안 갖는 게 오히려 행복에 가까울 수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랄까. 그 원단의 촉감 또 그 컨트롤러의 그립감처럼, 나 자신과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어울리는 것을 주변에 둘 때만 오는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한편 지금 사려는 이 집이라는⋯ 물건. 고민의 역사가 있다지만 그 둘과 비교할 수 없을만치 비싸고 오래 쓸텐데. 한 번 보곤 다음 날 계약이라니. 정말 이래도 되나? 헛웃음이 나왔다.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이 돈을 써서 뭔가 산다면 더 흡족할 줄 알았는데. 애초에 우리가 이 집을 왜 샀더라?

    내가 느낀 건 만족감이라기보단⋯ 숙제를 마친 홀가분함, 파도가 몰아칠 때 표류하진 않겠단 안도감. 뭐 그런 것들? 오묘한 마음으로 새 등본을 확인하고, 사인하고, 계약금을 송금했다. 무튼 드디어 집을 구했다! 집 때문에 맘 졸이는 나날도 끝이다⋯ 물론 삶이 보통 그렇듯 생각한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주택 구매 후보다는 구매 전에 부동산 정보를 열심히 찾아볼테다. 아직 결정 전이라면 그 내용에 따라 다른 선택이 가능하지만, 일단 일이 벌어진 후엔 무언가 더 알게 된들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몇 없을 테니.

    계약 전 하진과 나눈 대화도 ‘구매 후’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다짐과 같았다. ‘만약 이 투자로 1,2억 손해를 본다면 어떨 것 같아?’ 속은 좀 쓰려도 괜찮을거야, 우린 생각했다. 어차피 살 집은 필요하고, 집 없는 불안함에선 벗어나지 않겠는가. 리모델링만 잘 되면 다음 집을 구할 땐 선택지가 조금이라도 많을테고.

    집을 사고 나니 내가 합리적인 사람이 아님을 여실히 느꼈다.

    계약 직후부터 그 전보다 수십배는 자주 호갱노노와 네이버 부동산을 들락거렸다. ‘부동산 스터디’ 카페도 가입하고, 블라인드 부동산 게시판까지 수시로 들어가 동네, 아파트 이름을 검색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매물이 또 올라왔네? 새 실거래가는 얼마로 찍혔지? 그새 올라온 댓글을 볼까⋯

    내가 산 단지에 대해서만 그러지도 않았다. 아는 누가 최근에 샀다던 옆 도시 단지. 이전 집 앞 리모델링 단지. 분당에서도 ‘진짜 분당’은 여기라는 ‘서수정’ 단지⋯ 뭐를 알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틈 날 때마다 온갖 단지의 소식, 호가와 실거래가를 확인했다.

    게시판 글은 자리를 뜰 타이밍을 놓친 술자리 속 취한 상태로 억지로 건네받는 소맥잔 같았다. ‘상급지‘와 ‘하급지’를 나누고 임대아파트와 그 주민을 혐오시설로 묘사하는 시선을, 우리 단지와 옆 단지를 비교하며 매기는 점수를, 한 두 문장만에 상대를 무식하고 열등감 가득하다 낙인찍는 모습을 보면 속이 울렁거렸다.

    ‘이런 사람들 뿐이라니 정말 싫다!’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가만, 대체 누굴 향한 볼멘소리인가? 누구도 나를 이 술자리에 억지로 불러앉혀두지 않았다.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또다시 게시판을 여는 건 온전히 나 자신의 선택이었다. 어라, 나 또한 ‘이런 사람들‘인가.

    소위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담론을 보며 늘 냉소를 지었다. 모두가 집값은 잡혀야 한다면서 자기 집만은 오르길 바란다면, 이 모순된 욕망에서 비롯한 문제를 대체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어? 라는. 허나 그 냉소의 대상에서 나는 과연 예외였을까⋯

    ‘뭐를 알고 싶은지도 모르는’이라 적었지만, 솔직해져보자. 수없는 클릭과 스크롤링을 통해 내가 탐지하고 싶던 건 사실 이런 신호들 아닌가:

    내 구매가보다 훌쩍 높게 찍힌 실거래가. 사고 싶었던 단지 근처 개발 소식이 고꾸라졌다는, 그 포도가 알고보니 참으로 시더라는 소식. 우리 아파트 – ‘우리 아파트’! – 에 안 좋은 댓글을 다는 A는 시간 많고 할 짓 없는 흔한 악플러인 반면, 이 쪽을 좋게 이야기하는 B와 C는 점잖고 뭘 좀 아는 사람이라는 증거.

    그 모든 걸 종합해 만들어낸, 결국 너는 좋은 선택, 현명한 투자를 했다는 안심.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얻을 수 있는 안심이라는 게대체 내게 어떤 가치를 지닌단 말인가? 이 게임기를 내가 일주일에 몇 번이나 가지고 놀지, 내가 이 바지를 입고 앉고 걸을 때 얼마나 편할지. 마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얼굴도 본 적 없는 남이 내려줄 수 있는 양 구는 게 내 모습이었다.

    2026년 한국의 집 구매기에 돈 얘기를 빼놓긴 불가능해 보였다. 어찌저찌 그런다 한들 본질적으로 중요한 뭔가가 빠진 기분일 듯 했다. 그런 부채감에서 출발해, 어디서 시작할지 모르겠는 막연함을 다독이며, 집과 돈을 둘러싼 마음에 대해 적고 나면 무언가가 손에 잡히길 기대했다.

    글을 마친 지금, 나는 어떠한 해소의 감정보다는 맘놓고 돈을 밝히지도, 반대로 아예 돈에 초연하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어정쩡함만을 마주한 기분이다. 조개도 낙지도 없이 텅 빈 그물망을 들고 온몸에 진흙만 잔뜩 묻힌 내가 거울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모르겠어 / 또 모든 게 결국 돈 얘기가 돼 (조월, 「당신의 사랑을 빌미로 (feat. 해파)」)

    집은 안정감. 집은 갓 빨아서 갠 태양 냄새 나는 수건. 집은 고양이와 아이의 잠자리. 집은 딱 좋을 만큼만 펑퍼짐한 튼튼한 바지. 아니 집은 호재와 악재. 집은 공동현관 문을 여는 신분증. 집은 홍수 속 뗏목. 집은 누구나 이름을 아는 브랜드의 화려한 외투.

    나도 정말 모르겠다. 살아갈수록 돈 얘기가 아닌, 아니어야 할 듯한 모든 게 결국 당연스레 돈 얘기가 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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