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구매기 2 - 자립과 손 벌림 (또는 손 잡음)
분당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청소년기 나는 부모의 노후를 어지간히 걱정했던 것 같다. 어린 눈에도 영 돈 벌 요령은 없어 보이는 이 둘이 대체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남을꼬. 틈이 날 때마다 아무도 제안한 적 없는 증여 앞에 손사래쳤다.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 쓰지 마라.” 라던가, “나한테 물려줄 뭔가가 있다면 (없겠지만) 제발 그걸로 엄마 아빠의 노후나 잘 챙겨라” 라던가.
돌아보면 스스로도 어떻게 먹고 살지 전혀 감도 못 잡았던 시절인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애가 왜 벌써부터 이리 선을 긋냐고 서운해했다. 이러나 저러나, 몇 해 지나 떠난 제주 가족 여행에서 ‘사실은 지난 몇 년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었다’는 둘의 깜짝 고백을 듣고 동생과 함께 벙찐 뒤로 그런 걱정은 내려놓았다만.
그러나 솔직해지자. 그런 과민반응이 오롯이 그들에 대한 걱정에서만 비롯했을까?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러했지만, 결코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는⋯
나는 빚을 지기 싫었다.
아무리 가족 사이라도 무언가를 받으면 그만큼 빚진 마음이 들 것이다. 받은 것으로 쌓은 탑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의 길이만큼 나 역시 부채감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하기 싫은 일도 참고 하게 되고,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서도 참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러다 보면 진정 사랑에서 나온 말과 행동조차 정말 사랑에서 나온 게 맞는지, 아니면 그저 어떤 거래 관계 속 강요된 부채의 상환은 아닌지 (누구에게?) 증명할 수 없어질지 모른다.
물론 – 적어도 우리 집의 경우에서는 – 애초부터 대차 대조표를 맞추는 게 불가능할만치 기울어져 시작한 관계였으나, 그렇기에 더더욱 그런 걱정이 깊게 뿌리내렸던 것 같다. 부모 자식 사이의 근원적 불균형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사랑하기에 대등한 관계를 맺고 싶었다. 동시에 대등함을 위협하는 도움의 손길 하나하나를 그러한 바람에 대한 방해로 보았던 것 같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먼저 경계를 그어버리는 나의 습관은 하루 이틀 일도, 가족에 한정된 일도 아니다.
대학 전산학부 4학년에는 『운영 체제 및 실험』 이라는 전공 필수 과목을 들어야 했다. 그간 쌓아온 전공 지식을 총망라하는 학부의 정점이자 2인 1조로 진행되는 난이도 높은 실습 과제로 악명이 높았다. 애석하게도 내가 들은 학기엔 수강생 중 같이 조를 짤만한 아는 친구가 없었다. 보통은 비슷한 처지의 수강생들과 랜덤으로 조를 배정받는 운명에 몸을 맡기기 마련인 상황인데, 나는 그 대신 혼자 조를 짜길 택했다.
수많은 에너지 드링크와 (이제는 AI가 완벽히 대체했을) 스택 오버플로우의 검색의 도움으로 A-라는 나쁘지 않은 학점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 일화가 자랑스럽지 않다. 외려 부끄럽다. 낯선 이와의 부대낌이 가져올 불편함, 피해를 끼치고 또 입을 가능성, 쌍방으로 쌓아 나갈 부채의 가능성을 피할 수만 있다면 – 마치 결과가 나쁠 줄 당연히 안다는 듯이! – 훨씬 더한 고생길에 뛰어들길 마다 않는 모습을 들킨 기분이랄까.
그 때 눈 딱 감고 모르는 이와 조별 과제를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걱정한 대로 조별과제 잔혹사가 펼쳐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인연으로 오래 이어질 새 친구가 하나 생겼을지도 모른다. 누가 아는가. (물론 나는 아니다. 나는 그 기회를 날렸으므로⋯) 교환학생을 가서, 회사에서 일하며, 독서 모임에 나가서⋯ 살면서 이런 나의 낯가림, 곁을 못 주는 성격 탓에 놓친 관계의 기회가 수도 없다.
곁을 못 준다? 그래, 내가 누군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면 이런 묘사가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는 어려서부터 누군가에게 진정 곁을 주길 어려워했다⋯
하물며 낳아 기른 부모에게도 그랬으니, 그보다 덜 가까운 이들에겐 오죽했을까. 세상은 춥고 체온은 물론 따숩지만, 얼만치 가까워지면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입 냄새를 맡고 모난 가시에 찔리고 실망하게 되지. 난 그러느니 혼자 웅크려 덜덜 떨며 잠들길 택하겠네.
나는 세상과 대등하게 관계하려면 먼저 홀로 우뚝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십대와 이십대의 상당은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투쟁에 바쳐졌고, 실제로 어떤 날엔 어느정도는 이루어낸 기분이 들었다. 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러나 종종 그러한 자립의 허상을 처참히 깨부수는 계기는 찾아온다. 집을 사는 과정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정확히 그런 과정 중 하나였다.
이 시점에 집을 사는 게 맞을지, 여기 이 단지가 아빠는 어때 보이는지. 집 뺄 날도 잡아놨는데 갑자기 위약금을 물고라도 안 팔겠다는 전 주인 전화에 멘탈이 흔들릴 때도. 집을 사며 수차례 양친의 자문을 받았다. 계약 후 집 보러도 함께 왔었고⋯ 중도금을 낼 때 사회 초년생으로 모은 몇 년치 저금을 선뜻 빌려준 동생도 빼놓을 수 없다.
계약 전 보고 ‘낡긴 정말 낡았구나’ 싶던 집의 모습은 양반이었다. 가구와 소품이 모두 빠지고 드러난 집을 죽 둘러보는데 당혹스러울만치 우울해졌다. (집의 상태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여기 적으려 했지만, 주제를 벗어난 불평이 끝없이 이어져 지워야 했다⋯) 총체적 난국인 집을 함께 고쳐나가며 우울감에서 건져내 준 것도 양친이었다.
갈변된 사과를 연상케 하던 붙박이장 뒤 벽지는 풀과 벽지를 구해와 직접 도배했다. 소화불량에 빠진 세면대 파이프와 덜덜거리는 욕실 환풍기는 철물점에서 사온 새 부품으로 교체. 콘센트가 없던 화장실 천장에서 전기를 따 내린 덕에 드라이기와 비데를 설치할 수 있었다. 어두칙칙한 거실은 윗벽 합판을 원형톱으로 파내 캠핑용 조명을 끼워넣어 해결!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동안 그들이 반장이라면 우리는 좋게 봐줘야 어중간한 조수 정도였다.
도움은 가족 밖에서도 왔다.
‘남는 거니 그냥 가져가라’며 자투리 벽지와 쓰던 풀을 쿨하게 내어주신 해은인테리어 사장님. 벌써 세 번째 이사를 도와주시는 우일 아저씨와 팀원 분들. (이번엔 집 상태를 보고 전 주인을 욕하며 업무 범위도 아닌 청소를 함께 해주셨다.) 드러난 집의 민낯만큼 썩은 내 표정을 보고 중개비를 한 움큼 깎아주신 금토부동산 사장님. 원래 잡힌 일정을 조정하고 입주 다음 날 바로 급하게 와주신 입주청소 사장님.
덕분에 짜증낼 일도 추억의 씨앗 삼고, 좌절 속에서 웃을 구석을 찾을 수 있었다. 집을 사면서 스스로에게 되물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나 희종쓰, 나이 서른 넘어 아직도 이렇게 주변에 의지하다니⋯ 이게 맞나?
야스토미 아유무의 『단단한 삶』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입니다. (⋯) 의존할 곳을 점점 줄여 나가도 모든 것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코 끊을 수 없는 곳은 남게 됩니다. 만약 그렇게 의존하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하면 너를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 의존할 곳을 점점 줄여 소수의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에게 종속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다음 중요한 “명제”들이 등장한다:
자립은 의존하는 것이다. 의존하는 대상이 늘어날 때 사람은 더욱 자립한다. 의존할 대상이 감소할 때 사람은 더욱 종속된다. ‘종속’은 의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자립’한 것이다.
나는 세상과 대등하게 관계하려면 먼저 홀로 우뚝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폐 끼치는 자신을 마냥 부끄러워하거나 고쳐야 할 무언가로 바라보지 않는다. 내게 기대고 무게를 실어줄 때, 나 역시 사랑으로 받아줄 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기에.
물론 저어하는 마음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다. 세상살이란 숙제를 혼자 힘으로 못 해낸 기분에 종종 부끄럽다. 하지만 고마울 때는 온전히 고마워만하려 애쓴다. 벌린 내 손에만 고개를 처박고 있느라, 그 손을 잡아주려 자기 손을 내미는 상대를 똑바로 못 보는 게 훨씬 더 부끄러운 일이니까.
자립은 의존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명제를 이해하는 데 서른 해가 넘게 걸렸다. 늦었지만 살며 얻은 가장 마음에 드는 성장일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맘껏 빚지며, 빌린 것보다 더 크게 또 더 많이 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해 쓴 글 하나는 이렇게 끝냈다.
쓰러지다 시옷자로 포개어 겹쳐 선 나뭇가지처럼, 우리는 무너지는 와중 만나 서로의 기둥이 된다. 자신의 무게를 기대는 동시에 자신의 무게로 서로 받치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무언가 어깨 위를 짓누를 때 비로소 바닥의 모양이 더 잘 느껴지기 마련이다. 첫 집 구매를 ‘무너지는 와중’이라기엔 적절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만) 나름의 무게만은 확실했다. 그 무게 덕에 나를 받쳐주는 이들을 절실히 느꼈다. 또 한 번 나의 의존을 – 곧 나의 자립을 –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
집 구매기 1: 불곡산과 제4테크노밸리
분당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다음 이사 갈 땐 집을 사야겠다. 일이년마다 짐 싸서 이사 다니기 지겹다. 고양이 기른다고 눈치 그만 보고 싶다. 대단한 투자 수익은 바라지도 않고 ‘우리 집’이라 부를 공간을 꾸리고 싶다.
결심한 25년 여름. 우리의 1지망은 이미 전세로 살고 있던 분당 무지개마을이었다. 결단이 좀 더 빨랐다면 현실이 되었겠지만, 어영부영 마음의 준비를 마치는 새 단지는 예산을 벗어났다. 몇 개 집을 보고 계약의 문턱을 넘기 전, ‘이 돈 주고 여길 사는 게 맞아? 전세 만기도 일 년 남았는데 기다려볼까⋯’ 한 발 물러선 때가 막차였다.
이 동네를 처음 알게 된 건 23년 3월이었다. 당시엔 이매에 살았다. 결혼보다 이른 신혼 여행을 준비하며 앞으로 메는 가방을 각자 하나씩 마련하기로 했다. 하진이 원하던 모델과 색상이 죽전 신세계 파타고니아 매장에 남아있었다. 쇼핑을 마치고 나서니 해 질 시각을 살짝 앞둔 때였다.
선선한 날씨가 기분 좋았다. 배차 간격 길고 답답한 수인분당선 대신 카카오바이크를 빌렸다. 죽전에서 정북향으로 죽 놓인 탄천변 도로는 오리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슬쩍 꺾인다. 구미교 아래를 지나면 시야 아래 절반엔 파란 강과 회색 도로가 흐르고, 위 절반엔 초록 병풍이 서 있는 풍경이 맞아준다.
분당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세상의 비슷한 듯 다른 녹색을 하나씩 세어보면 몇 가지일지. 야트막한 게 산인지 언덕인지 헷갈리는 완만한 오르막 따라 깔린 채 바람 따라 사르르 파도치는 푸른 양탄자. 페달을 밟는 속도를 늦췄던 기억이다. 둘이 쓰는 메신저엔 당시 메시지가 남아있다. “여기 올라오는 길에 탄천이 되게 좋네. 뭔가 공원 같고⋯ 분당 구미동? 이 쪽.”
한 동안 잊고 산 풍경을 다음 살 집을 구하며 다시 만났다. 전용 12평에 사람 둘 고양이 둘이 살기가 쉽진 않아 조금은 넓어지는 집을 찾아봤다. 회사 근처인 서현, 수내는 가격이 안 맞았다. 부동산 차를 타고 조금씩 더 멀리 나가 보던 집 중, 무지개마을이 있었다.
문자로는 그 동네인 줄 몰랐는데, 다리를 건너며 알았다. 탄천과 불곡산이 가까운 수준을 넘어 베란다 창으로 훤히 보였다. 오래 방치되어 살벌한 건물 외관 때문에 생긴 걱정이 순식간에 잊히는 뷰였달까. 내부도 최근에 수리를 마쳐 깔끔했다. 하진은 반한 눈치였다. 결국 집을 계약했다.
세입자로 일 년 좀 넘게 살며 구매를 고민할 정도로 동네가 좋아진 이유. 그 풍경으로 대표되는 한적함이 단연 첫 번째였다. 단지 앞에 서는 수많은 빨간 버스가 그다음, 서른 번 넘게 방문한 오리역 CGV 아트하우스가 삼 등 정도 되려나. (집 사려는 이유로 아트하우스를 꼽는 걸 본 한 친구는 ‘들어본 집 구매 사유 중 가장 형편없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앞서 말했듯, 결과적으로 이 단지는 우리 예산 범위를 벗어났다. 고작 몇 달 새 왜 이리 올랐나 궁금했는데, 역 근처 ‘제4테크노밸리’라는 거창한 이름의 개발 계획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어떤 정치인이 관련된 코멘트를 했다나, 이런 승인을 받고 저런 발표를 했다고.
잠시나마 살아본 입장에서 드는 ’기업들이 여기 사무실을 차린다고?’ 따위 의문과, ‘왜 하필 지금 개발을 한다는 거야, 개발하지 마! 지금의 오리역도 좋아!’ 라는 아쉬움은 우리 말곤 아무도 관심 없었고⋯ 그리하여 우리의 첫 집은 오리 아닌 어딘가에 자리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본 오리의 사랑스러움을 다른 이들도 늦게나마 깨달아서 집값이 오른 것이였다면 조금은 덜 억울했을까? 정정당당한(?) 경쟁에서 졌으니? 자신의 부족함으로 놓친 전 애인이 그 멋짐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이렇게 적어 보니 우리의 씁쓸함에 아무도 관심 없는 이유가 이해된다.
작년 말 즈음, 단지에서 오리역을 향하는 탄천에 도보교를 짓는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원래는 돌다리가 유일한 건널목이던 곳이다.
일요일 낮마다 솜씨마을김치찌개를 먹으러 건넌 돌다리. 한 번은 쌓인 이끼 때문에 미끄러져 강에 휴대폰을 빠트려, 탄천에 다리 담구고 돌 바닥 더듬거리게 만든 돌다리. 술에 취한 날 하진과 집에 가다 혼자 자빠져 무릎이 깨진 돌다리.
불편했던 만큼 정도 쌓인 돌다리지만, 비가 와도 잠기지 않고 미끄러질 염려 없는 도보교가 생기면 아무래도 뒷전이 되겠지. 혹은 아예 사라지거나. 나는 주에도 몇 번씩 건너야만 했던 주민에서 부러 시간 내 찾아가야 하는 이방인이 되었고⋯ 그렇게 시간은 강물처럼 흐른다.
-
집 구매기 0: 2026년 5월 8일
우리가 처음으로 우리 집을 사서 들어가는 날이다.
5월 8일은 하진과 나에게 중요한 날짜다. 대학생 때 연애를 시작한 날이 2015년 5월 8일이다. 두 숫자의 자리를 바꾼 8월 5일은 결혼 기념일이다. 순전히 가족의 일정과 지갑 사정에 맞춰 정한 일자임에도 ‘연인’ 관계의 시작일과 종료일이 이루는 수미상관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퍽 놀라고 즐거웠다. 결혼 후부터는 해당 날짜의 원래 지위를 빌려, 여러 명절과 함께 양가 양친을 만나러 가는 핑계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번 주 금요일이면 5월 8일에 하나의 의미가 더해진다: 우리가 처음으로 우리 집을 사서 들어가는 날이다.
우리 집. 사서 들어간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적으면서 실감이 나지 않는 말들이다. 다소 얼떨떨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나는 ‘내 집 마련’이라는 주제에 대해 어릴 때부터 크게 기대를 갖거나 의미를 두었던 적이 없다. 그런 나도 이 정도이니, 확실히 큰 일이긴 한 모양이다. 실로 다사다난한 시간이었다.
이삿짐을 풀고, 주민센터에 다녀오고, 맡겨둔 고양이를 데려오고, 짜장면을 시켜 먹는 저녁 우리는 어떤 기분에 잠겨 있을까? 또 다른 월셋집, 전셋집을 들어갈 때와 다를까? 아니면 별 차이 없을까. 두 노부부가 수십 년째 살았다는 집의 꽃무니 벽지와 여기저기 울은 주황 장판은 옮겨온 가구와 짐과 섞여 어떤 냄새를 낼런지. 그래야 할 이유도 딱히 없지만, 괜히 벽에 못을 한 번 박아볼까.
고민하고, 구매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동안 마음이 덜컥거린 순간들이 있었다. 방지턱에 걸리듯, 옷감을 쓸어내리다 잘못된 바느질을 발견하듯. 불곡산과 제4테크노밸리에 대해, 유니클로 치노 팬츠와 스팀덱과 아파트에 대해, 자립과 손 벌림에 대해, 호갱노노와 부동산 카페에 대해, 학군과 라캉에 대해, 그리고 또 일일이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를 하나씩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하러 글로 남기는가? 늘 쓰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살면서 주택을 몇 차례 더 사게 될지 모르겠지만, 첫 집 구매는 이번이 마지막임은 확실하다. 큰 일을 새로이 겪을 때면 늘상 그렇듯, 집을 사는 일련의 과정 속 처음 보는 나를 (우리를) 발견했다. 단단했던 확신이 어떨 땐 강화되고, 어떨 땐 온전한 오해였음이 밝혀졌다. 다만 아직까진 그 발견을 – 내가 직접 겪은 일이라 한들 –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미심쩍다.
그 과정을 글로 자아내는 과정은 왜인지 묘한 이미지와 결부된다. 시간은 수도꼭지다. 누군가 가장 찬 온도로 레버를 돌리고 틀었나, 기억의 물줄기는 세차게 흘러내린다. 금세 망각이라는 하수구로 떠내려갈 그 흐름 속, 어떤 덜컥임들이 매생이 가닥마냥 하늘거린다. 글쓰기라는 채반으로 조심스레 건져낸 초록 아지랑이들로, 실을 잣듯 전을 부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이 비유 만큼이나 이상한 맛일지도, 그 양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겠지만. 한 끼 배만 채워도 족하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
『힌드의 목소리』
이만 천 이백 여든 아홉명.

1: 그러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만은, 『힌드의 목소리』는 실화에 기반한 영화다. 그 뿐 아니라, 영화에는 실제 당일 힌드의 목소리 – 총격이 빗발치는 거리에서 여섯 구의 가족들의 시신과 함께 망가진 차 안에 갇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통화 녹음 – 와 수화기 반대편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의 영상이 담겨 있다.
2: 힌드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듣는 순간부터, 터져 나오기보다는 넘쳐흐르듯이 눈물이 흘렀다. 그러니까 이게 실제 여섯 살 아이의 목소리라는 말이지. 내가 아는 여섯 살배기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눈웃음과 고집과 낮잠을. 그리고 몇십 분이 지난 어느 순간, 장소가 바뀌지도 않고, 아이는 그 상황에 처한 아이라면 누구나 그렇겠듯이 계속 같은 말만 – 데리러 와줘요, 총을 쏘고 있어요, 여긴 아무도 없어요 – 반복하고, 실질적으로 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어떠한 진행이라는 것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는 당일의 시간을 훨씬 압축해서 보여준다. 실제로 그날의 사건은 전날 야간 근무가 끝난 아침에 시작해, 어둠이 자욱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관객인 내가 알량한 지루함을 느낀 그보다 수십 배는 더 오래 혼자 차에 갇힌 힌드는 대체 어떤 시간을 지나야 했나. 고작 차로 8분 거리에 있는 아이를 구하러 응급차를 보내려면 이 사태를 만들어낸 이스라엘군의 허락만을 기다리며 수화기만 붙잡고 있어야 했던 봉사자들은, 대체 무슨 감정이었을까. 현실의 마흐디는 이 일이 있고 난 뒤 자원봉사를 그만 뒀다고 한다.
3: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목소리가 실제 그날의 목소리임을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했다. 그랬기에 극장 문을 나서며 궁금해졌다: 이 영화가 가진 힘 중 어디까지가 현실 그 자체에 기대고 있고, 어디부터가 영화를 만든 이들이 만들어낸 것일까?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들었는데, 그러니까 그 상은 이 영화의 정확히 어떤 부분에 주어진 것일까?
카우테르 반 하니아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 핵심은 소녀의 목소리를 들은 후 이 작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 이들의 입장에 서는 것이었다. 즉 적신월사의 관점이 영화가 지녀 마땅한 시선이었다. 이후 적신월사의 요원들을 어떻게 촬영할지를 고민했다. 이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사건 당일을 증언하는 인터뷰 모음집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되는 일은 원치 않았다. 힌드를 구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살아 있던 그때를 ‘재연’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위험한 발상이다. 관객은 배우들을 픽션 안에서 연기를 수행하는 객체로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힌드의 목소리>는 엄밀히 말해 픽션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픽션도 아니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겠지만,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영화에 필요한 개념은 철저한 재연이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연기보다 재연에 가까운 대사 처리를 요구했다. 사건 당시에 오갔던 대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연하도록 주지했다. 배우가 재연의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촬영을 중단할 정도였다. 실제 음성을 넘어 영상 아카이브까지 삽입한 이유도 위와 같다. 이전까지 영화가 제시한 현실보다 더 정밀한 기록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찌 답할지 잘 모르겠는 질문이지만,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을 하나 발견한 기분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유사한 형식의 영화를 더 보고 싶기도 하다.
4: 쓰면서도 이따위 글을 감상이랍시고 남기는 자신이 가소롭다. 다시 한번, 『힌드의 목소리』는 실화에 기반한 영화다. 어떻게든 구조 허가를 받아내고자, 차에 혼자 갇혀 있고 다쳤을지 모른다는 힌드와의 통화 내용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여론을 형성해 압박하자는 동료에게 오마르는 말한다. 소셜 미디어를 보고는 있는 거냐고, 이미 앱을 열어보면 길거리에서 죽어 나가는 애들 시체 사진이 가득한데 한 아이가 피를 흘리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신경이나 쓸 거라 당신은 진정 생각하냐고.
유니세프의 2026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부터 2026년 2월 3일까지, 가자지구에서 71,80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 중 적어도 21,289명은 어린이였다고. 이만 천 이백 여든 아홉명. 친구들과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영화관에 가서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는다.
-
『시그널리스』
“Are you still looking for answers where there are only questions?”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눈에 띌 때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어서 벼르다가 결국 플레이했다. 토요일 아침에 처음 잡았다가 주말이 끝나기 전 마쳐버렸다.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장르의 팬이 아닌 이까지 반하게 하는 건 보통 완성도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스토리가 만드는 감정의 울림이 중요한 게임이다. 그러나 (물론 훌륭한) 복잡한 세계관, 수많은 플레이버 텍스트, 설정들보다도 무엇보다 아트와 음악의 힘에 크게 기대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특히 탑뷰와 일인칭 시점을 넘나들며 다른 각도로 보게 되는 로우 폴리 모델링에서는 – 그 조악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조악함 때문에 – 고유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솔직히 연출이 과하다 느끼는 순간도 있었지만 (‘아니, 알겠어요…’), 나의 선호와 별개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힘이 느껴져 좋았다. 만든 이들이 자신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잘 알고, 그와 같은 무언가를 구현하려 최선을 다했다는 진한 인상을 받았다. 이걸 진짜 둘이 만들었다고?
게임을 마친 뒤 머리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왠지 모르게 이창동의 『버닝』을 떠올렸다. 표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사실은 모르겠는, 그러나 그걸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앎이 아닌 느낌을 위해 종종 이따금 다시 찾아오고 싶어질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