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 투 어스

풍선에 묶인 실을 꼭 움켜쥔 손처럼.

퇴근하면 구멍 뚫린 삽과 봉투를 들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운다. 며칠에 한 번씩은 ‘매일 해야 하는데⋯’ 후회하며 고양이들과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이를 닦인다. 말 잘 듣는 우리 고양이들은 칫솔을 들고 다가가면 짧게 도망치는 시늉 후 현실을 부정하듯 캣휠을 십수바퀴 돌리고는, 이내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애처롭게 순응한다. 둘 다 시간이 나는 날 밤엔 하진과 시리즈물을 한 편씩 본다. 혼자서는 볼 엄두가 잘 안 나는 시리즈물이지만 침대에 앉아 – 보통 시청 중간 쯤 벌떡 일어나 꺼내온 – 야식을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보면 금세 잘 시간이다.

하루 걸러 하루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탄천을 따라 삼십분 정도 달린다. 회사에 앉고나면 금방 땀이 식으며 등 뒤가 서늘하다. 자전거를 안 타는 이틀은 PT샵에서 트레이너님과 운동한다. 혼자서도 주에 하루 이틀 따로 헬스장에서 운동한다. 가끔 탄천에서 달린다. 평일 중 하루 이틀 저녁, 또 토요일 점심과 일요일 저녁은 하진과 먹는다. 집에서 두세번 해 먹으면 외식 한 번 하는 정도의 나름의 균형이 자리잡았다. 일요일 식사를 마치면 식기세척기를 돌려놓고 재활용 쓰레기와 폐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열흘에 한 번 꼴로 탄천 돌다리를 건너 십분 남짓 거리 오리역 CGV를 찾는다. 오리역 CGV에는 아트하우스관이 있어 전국에도 상영관이 몇 안 되는 궁금한 영화도 자주 걸어준다. 언젠가 이 동네를 떠나면 가장 그리울 점 중 하나다. 한 주씩 번갈아가며 고등학교 친구들과 산에 오르고, 안양에 있는 본가에 방문해 원가족과 식사한다. 머리를 자르고 한 달이 다가오면 조금 자라버린 옆머리, 뒷머리가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떄가 오고, 그럼 곧 다시 이발소를 찾는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고양이 화장실 통갈이 때가 돌아온다. 남은 모래를 싹 버리고 전체 통을 솔과 세제로 박박 청소한 뒤 걸레로 물기를 닦고 새 모래를 채운다.

살다보면 익숙하고 별 생각 없던 문장이나 표현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훅 파고든다. 작년엔 “down to earth”가 그랬다. 본래의 의미도 근 몇 년간의 고민에 대해 내린 해답과 결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 표현이 파고든 이유는 내겐 논리적이라기보단 감각적이다. 조금 이상한 생각 같지만, 둥실 떠올라 자꾸만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흘러갈 듯한 나를 끌어내려주는 무게가, 그 무게에서 오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생각이, 욕심이, 질문이, 자존심이, 불안이 내 세상을 흔들 때 나를 굳건히 땅에 발 딛게 해주는 움직임이, 날씨가, 고됨이, 반복이, 일상이⋯

요즘의 나에겐 풍선에 묶인 실을 꼭 움켜쥔 손처럼 고맙고 귀하다. 귀가길에 산책하는 사람과 강아지를 바라보며 나이 들어가면서도 이런 시간들이, 또 그 시간에 감사할 줄 아는 겸허함이 나와 함께하길 바랐다. ‘다운 투 어스’한 사람으로 남고픈 마음을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