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
이 사람들이 잔인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 단지 동물을 생명이 아닌 생산 라인 위 공산품으로 바라볼 뿐이라고.
『어떤 동사의 멸종』 이후 두 번째로 읽은 한승태 작가의 책이다. 그는 설명하긴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방식으로 글을 쓰는 르포르타주 작가다. 특정한 주제를 둘러싼 여러 노동의 현장에 잠입하여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간 일한다. 그러면서 보고 느낀 바를 글로 옮긴다.
이러한 형식의 결과물은 멋모르는 외부인의 알량한 체험담에 그칠지, 삶의 일부로서 포착해낸 어느정도의 진실을 담아낼지의 기로에 늘 서있기 마련이며, 작가도 이를 항상 의식하는 듯 보인다. 두 권을 읽은 나로서는 그의 글은 후자에 가깝다고 느낀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제목 그대로 고기로 태어난 생명들을 다룬다.
- 닭고기의 경우: 산란계 농장(충청남도 금산), 부화장(대한민국 어딘가), 육계 농장(전라북도 정읍)
- 돼지고기의 경우: 종돈장(경기도 이천), 자돈 농장(충청남도 강경), 비육 농장(강원도 횡성)
- 개고기의 경우: 첫 번째 개 농장(경기도 포천), 두 번째 개 농장(충청남도 금산)
건조하게 서술된 목차를 만나면 앞으로 이 책이 보기 싫은 것들을 내 눈 앞에 들이밀겠구나– 불길한 전망이 느껴진다. 처음 든 생각: ‘잠깐, 닭이랑 돼지 다음 소가 아니라 개라고? 지금 이 시대에?’ (책을 읽으며 개 농장이 우리 사회에서 음식물 잔반 처리라는 보이지 않는 역할을 오래도록 차지해왔음을 배웠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개와 닭과 돼지가 과연 다른가? 다르다면 왜, 얼마나 다른가?
책은 자주 동물 뿐만 아니라 그 동물을 둘러싼 인간들, 사장, 일꾼 그리고 함께 변해가던 자신 – ‘힘쓰는 동물’들 – 에게도 눈길을 향한다. 연민과 애정, 비판이 뒤섞인 복잡한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다른 질문도 떠오른다. 나는 이들과 다른가?
어떤 문제에 대해 수치 위주로 접근하게 되면 금방 이해하고 또 금방 잊는다. (⋯) 대상을 파악했다는 감각은 내적으로 형성된 불안감을 해소시키며 이때 생긴 만족감은 계속해서 의심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동력을 감소시킨다. 이해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계속해서 다른 세상일로 남을 수 있다.
이런 숫자들은 우리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언은 이보다는 점성이 강해야 할 듯싶다. 이들이 도깨비풀처럼 작은 가시를 품고 있어 아무에게나 달라붙고, 털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그 가시들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억센 뿌리를 내려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바뀌지 않는 자신이 어떤 의미에서 대단하다 싶을만큼 이 책을 읽고도 고기를 끊겠다는 의지, 내지는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달걀을 먹을 때 떠올린다. 전자레인지 크기 철장에 쑤셔 박혀 바닥에 깔린 한 마리 닭의 살점을 할퀴고 움켜쥐는, 그 위에 올라탄 세 마리 닭의 발톱을. 또는 마대자루와 구덩이에서 동족의 무게에 짓눌려 터져나가는 병아리를. 삼겹살을 앞에 두고 생후 6개월 후 도축되는 식용 돼지의 평균 수명은 15년 남짓하단 사실을 되새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우리 집 고양이들을 쓰다듬으며, 개들이 뜬장에 살며 평생 먹을 가장 신선한 음식이라는 잔반에 꼬인 구더기를 그려본다.
한 가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꿈꿔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맛있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식 자리에서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 한 점을 집어 들었을 때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책이 펼쳐낸 수많은 클로즈업 장면이 동반되는 이러한 멈칫거림마다 나는, 우리는 무엇이 되어버렸는지 되물으며 작가가 한 구절에서 명확히 짚어낸 지점을 되뇐다. 이 사람들이 잔인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 단지 동물을 생명이 아닌 생산 라인 위 공산품으로 바라볼 뿐이라고. 이 모든 지옥이 성립하는 데 있어 필요한 전제란 그것 뿐이라고.
그러니 서문에 적은 그의 목표가 적어도 한 독자에게는 온전히 달성되었다 말할 수 있겠다. 바로 그 지점만으로도 이 책을 성공했다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더 널리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몇 권 사서 주변에 돌렸다. 그만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