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늄 코트』

“요정들의 법정에서 펼쳐지는 한 여름밤의 괴상한 꿈.”

티타늄 코트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이 게임을 장바구니에 넣은 이유는 단순했다. 사회자의 공연 시작 선언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을 지나 1시간 가량 플레이 세션을 봐도 ‘뭔 게임인지 잘 모르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매체 불문 이런 특성을 장점으로 본다.

출시한 주에 구매해 20시간 플레이 끝에 엔딩을 본 감상: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한 게임이었다.

주인공은 요정들이 가득한 ‘티타늄 법정’에 갑작스레 여왕으로서 소환된 현대인이다. (게임은 『한여름 밤의 꿈』에서 따온 설정을 숨길 생각이 없다) 계속해서 지형이 바뀌고, 전쟁이 끊임없지만 요정은 영생하고, 마법은 당연하지만 자동차나 야구는 괴담으로 여겨지는 세계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가려면 정원의 거대한 철 대문을 열어야 하고, 문을 열려면 잃어버린 열쇠를 네 개 모아야 하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게임의 메인 루프는 크게 두 겹이다.

안쪽 루프에는 Match-3(같은 타일을 세 개 맞춰 점수를 얻는 게임)에 단순한 전략 전투를 더한 로그라이크 플레이가 있다. 이쪽은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는 미끼다. 이해도 쉽고 기본적인 재미도 있지만 깊이가 있다 보긴 어렵고, 중반을 지나면 아예 통째로 건너뛸 수단도 주어진다.

바깥 겹에는 로그라이크 세션 사이 메타 레벨 탐색 및 스토리 진전이 일어나는 어드벤처·비주얼 노벨 루프가 자리한다. 『Hades』나 『Inscryption』 같은 게임을 해봤다면 익숙할 흐름이다. 게임의 핵심은 이 바깥 루프다. 제작자 AP Thompson은 인터뷰 중 하나에서 이런 말을 하는데, 꽤나 정확한 설명이다:

티타늄 코트는 게이머들을 속여서 제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한 정성스러운 수작이에요.

그렇다면 바깥 루프의 어떤 점이 훌륭한가?

(경고: 이하는 강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 게임은 비디오 게임과 플레이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제4의 벽을 뚫고 플레이어에게 말을 거는 연출 자체를 신선하다 보긴 어렵다. 그러나 게임 고유의 장치를 역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기발한 지점이 있다.

대부분의 게임에는 미리 프로그래밍 된 게임 세상 속 인물, NPC가 존재한다. 개발자가 미리 짜놓을 수 있는 대사량은 한계가 있으므로, 같은 NPC와 대화를 반복하다보면 결국 준비된 대사가 바닥난다. 그 상태에서 다시 말을 걸면 NPC는 이미 했던 말만을 반복한다. 사실상 ‘여기엔 더 볼 게 없다’를 알리는, 게이머 사이엔 당연한 상식이다.

『티타늄 코트』는 이 비디오 게임의 상식을 내러티브의 주 요소로 끌어들인다. 게임은 초중반 꽤 긴 시간을 들여 NPC 하나하나에 매력을 부여하고 ‘실재하는 인물’로 느끼게 만들려 노력한다. 우스꽝스럽고 바보같지만 그렇기에 사랑스러운 요정들에게 플레이어는 점차 애착을 키워간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한 요정이 고장난다. 다른 요정이 건드려도, 여왕이 말을 걸어도, 영원히 마지막 대사 한 줄만을 반복하는 인형이 되어버린다. 주변 요정은 기겁하며 그가 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지독한 병증인 ‘상해버린(gone stale)’ 상태에 빠졌다 선언한다.

더 진행하다 보면 그 원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여왕임을 모두가 알게 된다.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기 때문에 요정들이 할 새로운 말이 바닥나는 것이다.

이 시점 플레이어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여기서 게임을 끄고, 요정들이 더 이상 상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계를 상상하며 떠날 것인가. 아니면 게임이 준비한 전부를 보겠다는 욕망을 위해 끝끝내 모든 요정이 상해버릴 때까지 전진할 것인가.

등장 요정 중 하나인 퍽(Puck)은 지속해 전자의 선택을 요구한다. 지금 네가 하는 짓의 의미를 왜 모르는 척 하냐며 핀잔을 주고, 성실하게 해결 중이던 퀘스트인 ‘저주’를 더 이상 안 풀기로 약속하면 집에 돌아갈 방법을 함께 찾아주겠다 계약을 제안한다.

나는 더 플레이하려는 욕망을 참지 못했고, 어느 순간 퍽 역시 상해버렸다. 그가 반복하게 된 마지막 대사가 빌어먹을 여왕에 대한 저주임을 보고 느낀 황망함이 생생하다. 그 이후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후자의 엔딩을 향해 달렸다.

이 딜레마는 흥미롭지만 플레이어가 요정들에게 실제로 마음을 쓰면서도 게임의 끝을 보고 싶을 만큼 충분히 몰입한 상태에서만 동작한다. 이 게임은 그걸 해냈고, 나는 고뇌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글에서 충분히 언급못한 아트와 글쓰기, 유머 감각 등 여러 훌륭한 점 중 무엇보다 그 부분이 이 게임을 멋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