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매기 1: 불곡산과 제4테크노밸리

분당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다음 이사 갈 땐 집을 사야겠다. 일이년마다 짐 싸서 이사 다니기 지겹다. 고양이 기른다고 눈치 그만 보고 싶다. 대단한 투자 수익은 바라지도 않고 ‘우리 집’이라 부를 공간을 꾸리고 싶다.

결심한 25년 여름. 우리의 1지망은 이미 전세로 살고 있던 분당 무지개마을이었다. 결단이 좀 더 빨랐다면 현실이 되었겠지만, 어영부영 마음의 준비를 마치는 새 단지는 예산을 벗어났다. 몇 개 집을 보고 계약의 문턱을 넘기 전, ‘이 돈 주고 여길 사는 게 맞아? 전세 만기도 일 년 남았는데 기다려볼까⋯’ 한 발 물러선 때가 막차였다.

이 동네를 처음 알게 된 건 23년 3월이었다. 당시엔 이매에 살았다. 결혼보다 이른 신혼 여행을 준비하며 앞으로 메는 가방을 각자 하나씩 마련하기로 했다. 하진이 원하던 모델과 색상이 죽전 신세계 파타고니아 매장에 남아있었다. 쇼핑을 마치고 나서니 해 질 시각을 살짝 앞둔 때였다.

선선한 날씨가 기분 좋았다. 배차 간격 길고 답답한 수인분당선 대신 카카오바이크를 빌렸다. 죽전에서 정북향으로 죽 놓인 탄천변 도로는 오리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슬쩍 꺾인다. 구미교 아래를 지나면 시야 아래 절반엔 파란 강과 회색 도로가 흐르고, 위 절반엔 초록 병풍이 서 있는 풍경이 맞아준다.

분당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세상의 비슷한 듯 다른 녹색을 하나씩 세어보면 몇 가지일지. 야트막한 게 산인지 언덕인지 헷갈리는 완만한 오르막 따라 깔린 채 바람 따라 사르르 파도치는 푸른 양탄자. 페달을 밟는 속도를 늦췄던 기억이다. 둘이 쓰는 메신저엔 당시 메시지가 남아있다. “여기 올라오는 길에 탄천이 되게 좋네. 뭔가 공원 같고⋯ 분당 구미동? 이 쪽.”

한 동안 잊고 산 풍경을 다음 살 집을 구하며 다시 만났다. 전용 12평에 사람 둘 고양이 둘이 살기가 쉽진 않아 조금은 넓어지는 집을 찾아봤다. 회사 근처인 서현, 수내는 가격이 안 맞았다. 부동산 차를 타고 조금씩 더 멀리 나가 보던 집 중, 무지개마을이 있었다.

문자로는 그 동네인 줄 몰랐는데, 다리를 건너며 알았다. 탄천과 불곡산이 가까운 수준을 넘어 베란다 창으로 훤히 보였다. 오래 방치되어 살벌한 건물 외관 때문에 생긴 걱정이 순식간에 잊히는 뷰였달까. 내부도 최근에 수리를 마쳐 깔끔했다. 하진은 반한 눈치였다. 결국 집을 계약했다.

세입자로 일 년 좀 넘게 살며 구매를 고민할 정도로 동네가 좋아진 이유. 그 풍경으로 대표되는 한적함이 단연 첫 번째였다. 단지 앞에 서는 수많은 빨간 버스가 그다음, 서른 번 넘게 방문한 오리역 CGV 아트하우스가 삼 등 정도 되려나. (집 사려는 이유로 아트하우스를 꼽는 걸 본 한 친구는 ‘들어본 집 구매 사유 중 가장 형편없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앞서 말했듯, 결과적으로 이 단지는 우리 예산 범위를 벗어났다. 고작 몇 달 새 왜 이리 올랐나 궁금했는데, 역 근처 ‘제4테크노밸리’라는 거창한 이름의 개발 계획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어떤 정치인이 관련된 코멘트를 했다나, 이런 승인을 받고 저런 발표를 했다고.

잠시나마 살아본 입장에서 드는 ’기업들이 여기 사무실을 차린다고?’ 따위 의문과, ‘왜 하필 지금 개발을 한다는 거야, 개발하지 마! 지금의 오리역도 좋아!’ 라는 아쉬움은 우리 말곤 아무도 관심 없었고⋯ 그리하여 우리의 첫 집은 오리 아닌 어딘가에 자리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본 오리의 사랑스러움을 다른 이들도 늦게나마 깨달아서 집값이 오른 것이였다면 조금은 덜 억울했을까? 정정당당한(?) 경쟁에서 졌으니? 자신의 부족함으로 놓친 전 애인이 그 멋짐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이렇게 적어 보니 우리의 씁쓸함에 아무도 관심 없는 이유가 이해된다.

작년 말 즈음, 단지에서 오리역을 향하는 탄천에 도보교를 짓는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원래는 돌다리가 유일한 건널목이던 곳이다.

일요일 낮마다 솜씨마을김치찌개를 먹으러 건넌 돌다리. 한 번은 쌓인 이끼 때문에 미끄러져 강에 휴대폰을 빠트려, 탄천에 다리 담구고 돌 바닥 더듬거리게 만든 돌다리. 술에 취한 날 하진과 집에 가다 혼자 자빠져 무릎이 깨진 돌다리.

불편했던 만큼 정도 쌓인 돌다리지만, 비가 와도 잠기지 않고 미끄러질 염려 없는 도보교가 생기면 아무래도 뒷전이 되겠지. 혹은 아예 사라지거나. 나는 주에도 몇 번씩 건너야만 했던 주민에서 부러 시간 내 찾아가야 하는 이방인이 되었고⋯ 그렇게 시간은 강물처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