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바나를 찾아

사람 목숨이 숫자고 다 자기 수식을 찾았으면 할 때

얼마 전 이런 트윗을 적었다:

고작 백 년을 못 채워도 이상치 않은 이 짧은 소풍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든, 명예든, 사랑이든 갖은 욕심을 다 부려도 결국 갈 때는 모두 놓고 떠나야 한다. 정답은 커녕 ‘더 옳은’ 답조차 사실은 없을 수 있단 걸 인정하는 게 첫 단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든다.

유통기한이 정해진 채로 덜컥 주어져버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다 의미 없으니 매 순간 감정, 욕망에 충실하면 그만인가. 그게 아니라면 갈 때 가더라도 떠난 후에도 남을 거대한 의미, 위대한 작품을 위해 바쳐야하나. 죽고 나면 그제사 찾아올 ‘더 중요한’, ‘더 진짜’인 삶을 그리며 생을 유예하고 싶지도 않고, 결국 죽으면 끝이니 다 의미 없다는 허무주의로 귀결하기도 싫다.

초가 녹아내리고 있다. 더 옳지 않더라도 가장 덜 후회할 답을 찾아, 선택당한 삶이 아닌 선택한 삶을 살다 가고 싶다.


화지 – 「이르바나」

짧지만 굵은 내 어린 날의 기억 조각들을 필두로
여태 다 분석하고 배제하려 했지 내 조상들의 실수를
할머니 말씀이,
“눈 감았다 뜨니까 여기야 너도 곧 그럴 걸?
이 나이 와 보니 좀 알아가
후회란 ‘왜 그랬지’보다는 ‘그럴 걸’”

난 고작 인간 난 작어 작고도 물 불 다 겪어 봤어도
세상에 볼 건 많아 많고도 내가 본 건 아직 빵 프로
날 때부터 우리 맘의 한 켠에 빈 구멍 이유라도 알고 갈 거고
종교나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고 안 이상 마련해 난
딴 거 팔 평온

내 유통기한은 축복이야 현재에 날 살게 해
내 줌과 시야 지금은 좀 뒤야 어디 있나를 알게 해
쉽게 온 만큼 쉽게 가고 영원할 수 없어
온 우주의 작은 점 속 전부 컨트롤 할 수 없어

지금 벌스 이 흐름이 내 삶의 비유쯤
최대한 채우다 지금은 여백 두고 필수뿐
놓을 건 놓고 주울 건 주워
내 16의 끝 정도에 돌아보면 뿌옇더라도 작품이 서면 돼

난 이 순간 속에 살고 그걸 너랑 나눌게
솔직하게 나도 없어 너랑 별반 다를 게
나도 사람 사람 사람 문제 많아 많아 많아
이게 다가 아닐 거란 맹신 하나 갖고 살아
이르바나 난 찾아가 내 이르바나
이르바나 난 찾아가 내 이르바나
이르바나 난 찾아가 내 이르바나
많이 짰어 웃을 날이 더 많아

내가 원하는 건 명성보다 그 후에 따를 세계관 그 뿐
똑같은 시대를 살아도 그 이해도는 되게 다를 거야
내가 원하는 건 돈보다 돈으로 사는 내 시간 그 뿐
반사회 반문화 반과학 비트닉은 아냐 걔네 같은 때 지난 소품

우리 숨을 축내는 우릴 묶는 굴레들
어차피 죽은 후엔 끝나 기억날 건 오늘의 축배들
말이 쉽긴 해도 너를 미치게 해도 매이는 건 역시 선택
내 친구들 진지해도 그런 의미에선 내 주변엔 병신 없네

힘에 겨울 때 잘 생각하면 여전히
우리는 결국에 주제 모르게 별을 내다보는 원숭이
거시에 기대면 근시의 미래 걱정 따윈 할 필요도 없음이 확실해지네
이 잠시의 기회에 매순간 매초 만취해지네

하나같이 미쳐 가 죄다 입을 모아 이건 말세다
모든 게 거꾸로 돼 아닌 척 들어세울 상아탑이 필요한 세상
사람 목숨이 숫자고 다 자기 수식을 찾았으면 할 때
난 그저 통계이길 거부하고 진짜 사람으로 살게

난 이 순간 속에 살고 그걸 너랑 나눌게
솔직하게 나도 없어 너랑 별반 다를 게
나도 사람 사람 사람 문제 많아 많아 많아
이게 다가 아닐 거란 맹신 하나 갖고 살아
이르바나 난 찾아가 내 이르바나
이르바나 난 찾아가 내 이르바나
이르바나 난 찾아가 내 이르바나
많이 짰어 웃을 날이 더 많아

웃을 날이 더 많아
춤출 날이 더 많아
웃을 일을 더 찾아
곧 끝 여길 뜰 날이 곧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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