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합창 동아리에 들었다. 보다 정확히는 들고 보니 합창도 하는 통기타 동아리였다. 「씨스루」 와 「금요일에 만나요」 새터 공연을 보고 ‘멋진 공연 하는 곳이구나’ 싶은 마음에 반해서 가입했는데, 합창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학기마다 정기 공연을 했다. 정기 공연 ‘엔딩’으로는 항상 40명 넘는 동아리원이 함께 서서 노래를 불렀다.
첫 학기인 13년도 봄 엔딩곡은 푸른하늘의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속에 묻어둔 채」 였다. 난생 처음 듣는 노래였다. 연습 첫날은 시작 전에 다 같이 앉아서 노래를 듣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잔잔한데 좀 지루하지 않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합창 연습은 힘들었다. 한 달가량 지하 동방에서 매일 밤 9시에 만나 몇 시간씩 연습한다. 각 파트가 나뉘어서 연습은 해야 하니 우리 파트는 지하 계단실로 나가는 날이 많았다. 울림을 더해주어서 우리는 ‘용기의 방’이라고 불렀다. 박자나 음정이 조금만 틀어져도 바로 지적이 들어왔다. 몇 시간 연습 끝에 고작 한 소절 나아가는 날도, 몇 소절 내내 다른 파트를 위한 화음 역할만 (“우– 우– 우––”)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음악을 찾아듣기만 했지, 노래를 잘 부르지도 부르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동아리에서 깨달았는데, 확실히 음감이라는 게 없었다. 베이스 파트장 형이 ‘지금 반 음 떨어졌다’고 할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두 개를 비교해서 들으면 뭐가 더 낮은지는 알겠는데 ‘그러니까 맞는 음으로 혼자 불러보라’고 하면 아까랑 똑같이 틀린 소리가 났다.
하지만 함께 부를 때는 옆 사람이 내주는 ‘맞는 음’을 따라갈 수 있었다. 모든 파트가 함께 모여서 맞춰서 연습해 보니 전체 노래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모두가 모여서 전체 곡을 불렀을 때 온몸이 짜릿했다. 수십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흐르고 내가 그 일부로 속한 기분은 느껴보지 못한 이에게 말로 설명하기 불가능하다.
힘들고 어찌 보면 지루한 연습 과정을 겪으며 빠르게 동아리에서 이탈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편 첫 봄 정기 공연이 끝나고 나는 동아리에 완전히 빠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합창의 경험이 나에겐 가장 강렬했다.
동아리의 ‘메인’에 해당하는 2학년 때는 추가로 공연마다 메인 중창 공연을 했다. 중창이나 합창할 때는 항상 연습과 공연을 이끌어가는 ‘지도’ 역할이 존재한다. 가을 메인 중창 때는 내가 지도를 맡았다.
도저히 내가 왜, 어떻게 지도를 맡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악보를 볼 줄도 모르고, 편곡도 못 한다. 각각을 나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들이 우리 학번에 여럿 있었고,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우리 메인 중창을 대차게 말아먹었을 걸.
메인 중창 연습은 엔딩 연습이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 새벽부터 몇 시간 연습하고, 그날의 회의를 마치고 (대체 무슨 안건이 있다고 그렇게 매일 회의를 했을까?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친구의 스쿠터나 택시를 타고 유성온천 근처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나오면 날이 슬슬 밝아질 무렵이고, 그제야 기숙사에 들어가 잠드는 게 우리 루틴이었다.
매일 일반적인 회사원의 근무 시간만큼을 함께 보내며 감정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버거운 상황도 잦았다. 잘 기억도 안 나는 이유들로 싸우고 화해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삶에서 가장 살아 있고 행복했던 시기들 중 하나였다.
우리는 메인 중창을 대차게 말아먹지 않았다. 사실 너무 잘했다.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났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영상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로 그 시절은 나에게 한 때의 추억이었다. 소중하지만 이미 지나간 “눈이 부시게 빛나던 날들”.
가끔 생각나면 유튜브에서 공연 실황을 보면서 따라 부르고 감상에 잠기다 결국 이제 내 삶이 그 시절과 얼마나 멀어졌는지 새삼 되새기곤 했다.
며칠 전도 그런 날이었다. 동아리에서 만난 배우자와 함께 합창 영상을 보며 그 길고 고통스럽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다 잠들고, 다음 날 깨어났는데 문득…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 배움, 갈등, 화해, 성공과 실패, 희열, 좌절, 추억. 그 모든 게 합창하던 그 시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 최근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긴다. 합창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