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료와 일하고 싶으신가요

일상 속 비전 제시, 고객 중심 사고.

들어가며

회사에서 피어 인터뷰(협업 관점에서 진행하는 다른 직군과의 인터뷰)에 들어가면 단골로 받는 질문이 있다. 바로

어떤 [프로덕트 디자이너 / 백엔드 엔지니어 / 데브옵스 엔지니어 / 프로덕트 매니저] 와 일하고 싶으신가요?

라는 질문이다. 해당 직군에 특화된 역량은 같은 직군 동료 분들이 더 잘 봐주실 거라 믿어서, 나는 여쭤보신 분의 직군에 따라 드리는 답이 크게 달라지는 편은 아니다. 협업하는 입장에서 공통적으로 바라는 점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일상 속 비전 제시

첫째로 일상 속에서 팀에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비전은 분기 비전, 올해 비전 같은 각 잡고 문서와 함께 미리 그려보는 종류의 비전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일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와, 이렇게 [제품 / 팀 / 일하는 방식]이 바뀔 수 있겠구나! 이런 변화를 만들 수 있으면 너무 신나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미처 못 보았던 가능성을 보게 만들고 기대와 설렘을 심어주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 지금 대다수 사용자가 느끼는 어색함, 불편함을 이런 UX의 변화만으로 깔끔하게 풀어줄 수 있겠구나!
  • 이 작업의 성능이 이렇게까지 개선된다면 기존에는 성능 문제로 불가능했던 이러이러한 기능도 제공할 수 있겠다!
  • 우리 제품이 이렇게까지 예뻐질 수 있구나. 사용자가 사랑에 빠질 것 같다!
  • 지금은 우리가 A라는 문제를 풀고 있지만 이러이러한 단계를 거쳐서 B, C라는 맥락까지 확장해나가면 경험이 훨씬 자연스럽고 매끄러워지겠군!
  • 배포와 롤백이 이렇게까지 빠르고 편해지면 릴리즈가 지금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해지겠네!

자신의 업무에 깊게 몰입하며 높은 기준을 견지하는 동료는 일상적인 업무 수행 중에 이런 순간을 자주 선사한다. 다음 단계로 발전된 모습을 함께 꿈꾸고 그걸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정, 협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다.

고객 중심 사고

둘째로 고객 중심 사고가 자리 잡은 사람이다.

‘고객 중심’ 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상당히 비직관적이고, 의도적인 단련이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특히 만드는 과정에 깊게 몰입하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그렇다. ‘내’가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에서 나 아닌 다른 이를 최종 결정권자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 당장 고객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하자. 코드의 완벽한 추상화를 깨트리며 이런 저런 장기적 문제가 예상되어 설령 나중에 일을 두 번 할 것이 뻔하더라도, 빠른 해결책부터 찾아 일단 내보내야 한다.
  • 디자이너 눈에 A안이 명백하게 우월한 시안이지만 테스트 결과 고객 대부분이 B안을 선호하고 잘 쓴다면? B안에 분명히 더 나은 무언가가 숨어있으니, 그걸 찾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데브옵스 입장에서는 찜찜한 구석 없이 이상적이지만, 개발자들이 쓰기엔 너무 불편한 파이프라인은 절대 잘 만든 파이프라인이라 할 수 없다. 개발자가 데브옵스의 고객이다.

제품은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것이다. 가정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과정에서의 에고를 버리고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며 이뤄야 할 목표에 집중하는 팀이 그렇지 못한 팀보다 실제 문제를 더 잘, 빠르게 해결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맺으며

글을 쓰며 일단 나 자신부터 충분히 고객 중심 사고를 가졌는지, 주변에 과연 비전을 제시하는 동료인지 또 한 번 돌아보고 반성했다. 좋은 동료의 길은 멀고도 험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