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단상

Unplugged, 성원권, 여름보단 겨울, 일의 재미, 결함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downwithyou

Unplugged

지난 주말엔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앱을 지웠다. 몇 달 전부터 의미없이 계속 피드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데서 오는 피로감과 허무함이 쌓인 상태긴 했다. 다만 결정적인 계기는 뒤늦게 돌아보니 한 영상이었다.

지난 주말, 대전에 내려갔다. 애인 집 앞 색색으로 단풍 든 거리가 예뻐서 자전거를 타고 가며 머리 위를 영상으로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는데 용량이 너무 커서 그런지 색이 날아갔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회해보려다 계속 실패해서 ‘이 색이 아니라고!’ 하면서 성질이 나던 차였다.

문득, ‘바로 나가면 단풍 든 거리도 그대로 있고, 나는 이미 그걸 눈에 다 담았는데 이 영상을 이 앱에 색이 안 날아가게 올릴 수 있고 없고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것 때문에 짜증을 내고 있나’ 싶어 어이가 없었다. 대전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돌아온 후인지 이제는 때가 되었다 싶어 앱을 다 지웠다.

아예 계정을 지우거나 한 건 아니지만 앱이라도 없이 일주일 살아보니 만족스럽다. 언제 또 못 참고 깔지 모르고, 아낀 시간에 결국 유튜브나 슬랙 새로고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하나씩 해결해보는 걸로.

성원권

생존 이후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나, 또 다들 어떤 이유와 목표를 갖고 살아가나 따위의 고민이 느슨하게 이어지는 요즘이다. 『사람 또는 환대』 를 읽다 꽂힌 성원권(membership) 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계속 맴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태아, 노예, 군인, 그리고 사형수의 예는 사람의 개념에 내포된 인정의 차원을 드러낸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실종자의 예에서 보았듯이 특정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ㅡ동어반복적으로 들리겠지만ㅡ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회란 다름 아닌 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참 촘촘하게 나뉘어 있다. 결국 인간이 하는 행동 대부분이 내가 (또는 다른 누군가가) 어떠한 ‘우리’에 속할 자격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발버둥인가 싶다. 그렇다면 어떤 – 또 얼마나 많은 – ‘우리’에 속하며 속하길 희망하는지, 어떤 이를 환대하며 어떤 이를 밀어낼지가 삶의 큰 궤도를 설정할 것이다. 스스로 던져놓고 머리 속에서 굴려보는 질문.

여름보단 겨울

슬슬 공기가 차갑다.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나뭇잎 떨어지는 건 아쉽지만 눈 내린 장면만이 줄 수 있는 포근함과, 얼은 물로 덮인 풍경에서 따듯함을 느끼는 아이러니가 즐겁다. 축 늘어지는 더위보다도 역시 떨면서라도 좀 더 깨어 있게 만드는 추위를 고르겠다.

고양이 때문에 종일 트는 보일러 덕에 난방비는 많이 나와도… 반갑다 겨울.

일의 재미

챕터 구성원 분과 1:1 미팅을 진행하다가 내가 요새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하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하고, 동시에 매일 진행하는 일상적인 업무가 재밌는지 아닌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에게 이런 것들이 일터에서의 만족도에 꽤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때가 짧지 않았던 터라, 무슨 변화가 있나 미팅 이후에 좀 생각을 해보았다.

어느정도 내린 결론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지가 달라졌고 (프론트엔드 개발 → 함께 회사를 만들어나가는 일) 일의 재미를 정산하는 주기가 달라졌기 (일/주 단위 → 분기, 년 단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미있게 일하고 있고, 새롭게 정의된 재미가 유지되는 건 여전히 중요한 듯.

결함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노 필터』 에는 인스타그램의 창업자인 케빈 시스트롬이 피렌체에서 사진 수업을 듣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교수가 시스트롬의 고급 카메라 대신 홀가라는 작은 카메라를 쓰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결함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나는 어릴 때 결함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게임 캐릭터를 키울 때면 스킬을 한 번이라도 잘못 찍는 순간 낙담해서 더 이상 키울 의욕을 잃곤 했다. 고등학생 때 목디스크 진단을 받고는 벌써부터 몸이 이러니 인생 망한 기분이 들어 크게 우울했던 기억도 있다.

어떤 계기를 집어내긴 어렵지만 살아가며 서서히 결함을 사랑하는, 아니 사랑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재미를 찾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삶에서 멋진 점을 훨씬 많이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상이 완벽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면, 음정 박자 나간 노래에도 즐겁게 춤 출 수 있는 자의 삶이 더 풍요로울 것이다. 지금의 내가 좋다.

downwithyou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들려줘 간만에 듣고 또 꽂혔다. 이센스의 노래는 내 삶의 각 시기마다 다르게 와닿는 게 신기하다.


그래서 네 목푠 뭔데?
지금 와선 잘 모르겠대 일단 돈이나 벌재
그래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네 돈이 최고지
다른 뜻 있어 한 말 아냐 돈이 최고지

넉넉히 챙겨 놓고 생각해보자
언제든지 엿 같아지면 바로 떠날 수 있게
모아둔 것들 다 편도 티켓
같은 돈이면 서울보다 몇 배 더 큰 집에서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서울보다는 훨씬 더 조용한 새벽
물론 가끔은 잠이 없는 홍대 강남 이태원이 그립겠지만
편한 잠을 얻을 것 같아서

이건 딴 데 안 살아본 놈의 상상이지
사실 아직까지 못 받아들인 몇 가지 때문에 그냥 하는 소리고
난 여기서 끝장을 보긴 해야 해 Baby I'm down with you

어 나 잘하고 있어 엄마
어제 하룻밤 동안에 거의 2천만원 벌었어
엄마 아들 생각보다 잘 나가
내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말했었잖아

서른즘에 짬밥 얘기하고
내 어릴 때 생각대로 그딴 건 의미 없었네
소신은 선택이고 성공은 좀 다른 문제
냉정히 봐서 안 흔들린 적 없던 믿음

그래도 기본이 없는 새끼는 곧 무너져
그러니 할거 해
너무 많은 얘길 듣는 것도 좋지 않아
내 계획에 대해 의심을 걔네보다 많이 한 건 나였었는데
해냈네

가만히 앉아 영원하길 바랄 순 없지
뱉어놓은 말은 무거워져 가만 놔두면
아들 어떻게 되든 간에 겸손해라
엄마 근데 요즘은 겸손한 게 더 손해야

Yeah 멋진 일이지 Rapper들이 갖고 가는 rap money
Dok2가 열여섯 때부터 말해온거지
스물한 살 때 내 공연 페이는 돼지고기
이젠 다른 데다 다른 것들을 채워 넣지

2001년 타이거 J said Good Life
그때 그가 말한 그 삶은 어떤 거 였을까
난 지금 설레임의 정도와 종류 그 둘 다 달라져 있어

그런데 심야가 뱉는 말은 날 같은 듯 다른 델 데려가
얜 최고야
누구보다 기대해 이 새끼의 career high
우린 어쩌면 다 비슷한 말을 하는 건가
Love is not enough 혹은 사랑이 모든 것

완벽한 건 아직 못 본 거 같아
내가 쫓던 것 중에 몇 개는 얻었어
뭘 더 보게 될지 난 그 여자가 보고 싶군
이런 얘긴 그냥 딴 데다 치워 놓구

이전 글
이르바나를 찾아
다음 글
2022년 플렉스팀 프론트엔드 챕터 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