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duct Manager로의 직무 전환 이야기

    6년의 Product Engineer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Product Manager로 일하게 된 이야기.

    들어가며

    지난 10월, 직무를 바꿨다. 회사를 옮긴 건 아니고, 플렉스팀에서 하는 일만 달라졌다. 6년간 맡았던 Product Engineer 역할을 내려놓고, Product Manager(이하 PM)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관련해서 반복적으로 답하게 되는 질문들도 있고, 작은 결정은 아니다 보니 한 번 글로 남기면 하면 좋을 것 같았다.

    PM은 어떤 일을 하는가

    가족 포함, 업계 밖 지인이 가장 먼저 묻는 건 ‘PM이 어떤 역할인지’였다. 재밌게도 막상 명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는데, 늦게나마 정리할 계기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PM의 역할은 ‘팀이 제품을 통해 시장에서 풀 가치가 있는 고객의 문제를 찾고, 잘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이다. 모호해 보이는 정의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동일한 이름의 직군에 기대하는 역할은 회사나 제품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그걸 감안하되, 제품 중심 IT 스타트업이라면 아래 정도는 어떤 곳이든 비슷하게 적용된다.

    • 팀이 풀 가치가 있는 문제를 정의한다. 먼저 고객의 삶 속 어려움, 시장에 존재하지만 충족되지 않은 요구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문제를 잘 풀었을 때의 사업적 임팩트를 예측한다.
    • 풀 가치가 있는 문제 중, 무엇이 지금 가장 중요한지 가려낸다. 판단에는 데이터, 고객의 반응, 시장의 상황, 팀의 상황 등 다양한 근거가 개입된다. 이를 수집하고 올바르게 해석하여 지금 가장 집중할 문제를 판별한다.
    • 가장 중요한 문제를 찾았다면, 풀 방법을 찾는다. 개발, 디자인, 비즈니스, 마케팅, 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주어진 제약 아래서 구현 가능한 최선의 해결책을 그려낸다.
    • 그 문제가 ‘풀린 모습‘을 정의한다. 우리가 성공한다면 고객의 문제가 어떤 모습으로 해결되는지, 그 해결책은 무슨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지, 어떤 지표와 반응이 근거가 될지 안다.
    • 위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팀 전체가 충분히 이해하고 같은 페이지에 있도록 한다. 서로 다른 전문성과 배경을 가진 동료를 같은 목표를 바라보게 만들고, 혼자로는 이루기 어려운 성과를 이뤄낸다.

    더 자세하게 설명된 한국어 자료로는 조성문 님의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란?」을 추천!

    왜 엔지니어를 그만두었나

    나는 엔지니어로서 내 커리어가 만족스럽다. 운과 주변 좋은 분들의 도움 덕이지만, 내가 프로그래밍을 순수하게 정말 재밌어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좋은 경력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재밌는 도구를 더 빨리 잘 다루게 되어 결국 멋진 걸 만들기 위해’ 했던 많은 일들이 성취와 기회로 이어졌다.

    누구나 돈을 내고도 하고 싶을 만큼 순수한 재미를 느끼는 일이 있다. 그 일을 업으로 삼는 건 커리어 측면에선 불공평한 이점(unfair advantage)으로 작용한다. 일터에 흔한 고됨, 지루함이 아닌 즐거움은 더 오래 높은 능률로 일할 연료가 된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 주말과 휴가 때에도 관련된 생각을 안 놓고, 세상의 모든 자극은 백그라운드에서 늘 도는 필터를 거쳐 업무에 대한 영감으로 들어온다.

    작년쯤부터인가, 그런 이점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개발이 예전처럼 재밌지 않았다. 엔지니어로서 부족한 점들은 눈에 띄는데, 메꾸려 노력하고픈 기분이 안 들었다. 당시 적은 글에 심경이 드러난다.

    다양한 줄기로 흐르는 생각 모두가 결국 ‘열정’이라는 본류로 반복해 돌아오는 요즘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안 보였다던가. 다양한 열정 속에 휩쓸려 정신 없을 땐 열정의 가치, 또 열정 둘 곳의 귀함을 참 몰랐구나 싶다. 대체 뭐 때문이지? 왜 피로한지 말을 줄 세우기조차 피로해서 미루고만 있다.

    몇 주 전엔 “여러모로 바닥을 찍는 기분 속에서 허우적대는 요즘이다. 처박히지 말고 튕겨 오르자!” 라고 적었다. 적고 나니 문장이 벌떡 일어나 튕겨 오르도록 손을 끌고 등을 밀어주었다. 큰 피로함을 이기려면 일단 작은 피로함부터 이겨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만 미뤄야 할 때가 코 앞이다.

    이미 쌓아놓은 경력과 기술을 갖고 앞으로 개발자로 쭉 일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게 과연 팀에 내가 가장 잘 기여하는 방법일지, 또 내 시간을 가장 존중하는 결정일지 자문했을 때,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만 미뤄야 할 때가 온 듯했다.

    왜 PM인가

    ‘지금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열정을 태울 수 있는, 그러므로 결국 잘하게 될 일’을 찾기 위해 최근 들어 내가 재밌게 느끼는 주제와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데 자꾸 하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았다. 결국 아래 둘로 좁혀졌다.

    • 어떤 방식으로든 고객의 중요한 문제를 찾아낸 뒤, 멋지게 해결해낸다. 고객은 행복하고, 사업은 성장하게 만든다.
    • 다양한 이의 힘을 모으고 생각의 정렬을 맞춰, 혼자서는 못 푸는 크고 중요한 문제를 함께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각자에게 좋은 커리어,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경험을 만들어낸다.

    위에서 이야기한 PM이 하는 일과 거의 완벽히 겹친다. 덕분에 다음 할 일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토스에서부터 생긴 PM/PO 역할에 대한 관심이 언젠가부터 내 안에선 자명해졌던 것 같다.

    어떻게 전환했나

    직무 전환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결심이 선 시점에 엔지니어링 리드와 PM 리드에게 의사를 표했다. 그렇게 진행해보자는 합의 후, 챕터 리드 및 초기에 합류한 엔지니어로서 나에게 의존성이 걸린 일을 식별하고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고 팀의 입장에서도 직군 전환이 말이 되는 시점이 왔고, 그게 지난 10월쯤이었다.

    전환은 큰 어려움 없이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플렉스팀에서 일하면서 계속 PM 역할에 느슨한 관심을 두고 회사 안팎으로 관련 조언을 구해온 게 도움이 되었다. 팀 내에 이미 다른 직군에서 PM으로 직군을 변경한 사례가 존재했고, ‘PM 관심 있다’, ‘하면 잘할 것 같다’라는 이야기도 서로 간간이 나누어왔다.

    팀의 입장에서는 검증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 대신 상대적으로 덜 검증된 영역에 대한 도전의 리스크를 함께 감수하고 지원해준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사실들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 3년 가까운 재직 기간 동안, 팀에 필요한 업무라면 가리지 않고 맡아서 책임감을 갖고 높은 완성도로 수행하는 모습을 통해 팀 내에서의 신뢰를 쌓았다.
    • 최초의 프론트엔드 챕터 리드 역할을 맡아, 팀과 챕터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람과 조직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 평소 제품 개발 과정에서 구현 관점뿐만 아닌 고객과 제품 관점에서도 의견을 내었으며, 관련 리소스를 찾아보고 공유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등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다.

    해보니 어떤가

    PM으로 일한 지 이제 두 달이 좀 넘었다. 새로운 게 많고, 자신의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는데 빨리 다 메꾸고 엄청나게 잘 하고픈 마음이다. 주변에서 신나보인다는 코멘트를 많이 들었는데, 티가 날 정도라니 부끄러우면서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직무 전환의 원래 목적은 잘 달성한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느낀 점이 크게 둘 정도 있다.

    먼저, 제품 출시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첫 번째 단계로 오면서 이 역할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정말 적고 동료의 힘이 절실함을 느끼고 있다. 프론트엔드 개발을 할 땐 내 작업이 출시 직전 단계이니, 내 구현이 더 빨라지면 그대로 출시 일정을 당길 수 있었다. PM으로서는 그런 여지를 아직은 잘 못 찾고 있다. 디자인이나 구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생기는데, 더 빠르게 더 큰 임팩트를 내기 위해 PM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더 고민하고 배워야 함을 매일 느낀다.

    다음으로, 직무는 바뀌었지만 엔지니어로서 쌓은 경험이 헛되지 않음을 느낀다. 디자이너와, 또 엔지니어와 협업할 때 엔지니어링적 사고가 장착된 덕에 미리 함정을 피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다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너무 엔지니어 입장의 사고만 하게 되는 건 경계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 역할은 그 역할의 전문가인 동료에게 맡기고, 다양한 관점과 층위에서 제품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맺으며

    직무 전환은 한 순간처럼 보이지만 돌아보면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과정에서 도움과 영감, 그리고 응원을 주신 모든 분께, 또 믿고 기회를 준 회사에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만큼 좋은 PM이 되어 보답하고자 한다.

    커리어의 두 번째 챕터도 잘 부탁드립니다 🙂

  • 플렉스팀 프론트엔드 챕터 리드 회고

    프론트엔드 챕터 리드 역할로 일한 일 년 반 남짓을 돌아봅니다.

    들어가며

    몸담은 플렉스팀에서 2021년 5월부터 프론트엔드 챕터 리드 역할을 맡아 왔다. 그리고 1년 반이 살짝 덜 지난 2022년 10월, 사내 직무 전환과 함께 리드 역할을 내려놓았다. 챕터 구성원은 7명에서 20명, 전체 팀은 47명에서 130명까지 커지는 사이 양적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챕터 리드로서 함께한 그 시간을 간단히 돌아본다.

    실패 : 슈퍼 히어로 흉내

    사실 이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터라, 챕터 리드 역할이 처음이 아니었다. 첫 리드 시절을 돌아보며 스스로가 좋은 리드였을지 자문해보면. 사실 아쉬운 점이 많았다. 때문에 플렉스팀에서 챕터 리드를 하게 되면서 ‘이번에는 처음 할 때보단 잘 해야겠다’라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압박을 꽤 받았다.

    그 압박을 헤쳐 나가기 위해 최초로 택했던 전략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일을 들고 와서 전부 내가 해치워버리기’였다. 기존에 맡고 있던 일도 적지 않았고 이미 리드로서 맡게 된 미팅 등 업무가 추가된 마당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걸로 모자라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주인 없이 남겨진 업무까지 내가 하겠다고 끌어안았다.

    결과적으로는 – 짐작할 수 있듯이 –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을뿐더러, 역효과만 났다. 들고 간 업무 자체도 제때 진행되지 않았고, 심적으로 느끼는 압박만 늘어 심해졌을 때는 회사에 나오기도 싫고 일도 재미없어지는 상태까지 빠졌다. 다행히도 팀의 여러 동료에게 도움을 청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덕에 너무 늦기 전에 “지금 내 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업무를 들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신뢰 : 팀에 기대기

    그러한 실패를 통해 ‘훨씬 더 나은 개별 기여자’가 되려는 노력이 ‘좋은 리드’가 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것을 배웠다. 그때부터 개인에 의존하기보단 함께 더 잘 일 하는 법, 빠르게 성장하는 팀의 속도에 적응할 수 있는 업무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자연스럽게도, 혼자 다 할 수 없으니 함께 일하는 이들을 동기부여하고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위임할 것이며 어떻게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되 완성도는 놓치지 않고 챙길까? 처음엔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고 헛디딘 적도 많았던 질문이었다. 하나 충분한 반복 학습과 시행착오를 통해 차츰 감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둘을 서서히 그러나 명확히 깨우치게 되었다. 첫째, 모든 상호작용의 시작은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관심과 아끼는 마음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둘째, 진정 믿고 중요한 역할을 맡겼을 때, 적절한 도움이 함께한다면 사람들은 거의 항상 기대를 넘는 결과를 낸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특히 역할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리드가 자기 능력은 과대평가하고 팀원의 능력은 과소평가한다– 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 : 자라기 위해 내려야 할 뿌리

    신뢰 기반의 위임이 점차 익숙해지며, 리드로서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게 삼은 목표는 바로 문화를 만드는 일이었다. 회사와 챕터의 결정들에 대한 맥락과 배경을 모두가 명확히 이해하고, 필요하면 나로부터 바꿀 수 있다 믿고 실제로 그리하는 문화. 개인 수준이 아닌 팀 수준의 결과물을 최적화하여, 로컬 맥시멈이 아닌 글로벌 맥시멈을 추구하는 문화. 높은 기준을 견지하며, 구성원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갖고 리드처럼 행동하는 문화.

    이는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회사의 필요에 기인한 목표였다. 회사가 너무 빨리 크고 있었기에, 챕터도 그 속도에 맞춰 성장할 준비가 필요했다. 몇몇의 개인기에 의존한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다. 초기에 합류한 이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다음에 오는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길게는 –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 팀의 문화의 많은 부분을 정의한다. 문화의 초석을 닦는 일이 당장의 업무 효율화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때문에 때론 단기적인 비효율도 감수하며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큰 노력을 들였다.

    결과적으로 다행히 의도대로 잘 동작해준 것 같다. 이제 플렉스팀 프론트엔드 챕터는 문제를 발견했을 때 누군가 해결해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발제자부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직접 찾아 제시하고, 필요하면 함께할 이를 꾸려 실행에 옮긴다. 개인이 당장은 약간 돌아가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팀이 더 효율적으로 잘 일하게 될 경로가 보이면 그 길을 택한다. 이미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낸 프로세스, 쌓아온 자산이 여럿이라 팀 차원에서의 노하우도 생기고 자신감도 올라온 상태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챕터를 어딘가에 소개할 때 가장 자랑스럽게 말할 지점이다.

    책임 : 나쁜 팀은 없고 나쁜 리더만 있다

    리드를 내려놓을 즈음 한 동료가 물었다. “더 나은 리드가 되기 위해 도움이 되었던 방법 같은 게 있나요?” 내가 드린 대답은 “저도 모르는 게 너무 많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내 책임의 범위를 넓게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였다. 『네이비씰 승리의 기술』 에는 ‘극한의 오너십’이라는 테마가 반복해 등장하는데, 아래는 관련해 좋아하는 인용구 중 하나다:

    “궁극적으로 우리 조의 성적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나쁜 팀은 없으며, 오직 나쁜 리더만 있다는 개념은 쉽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의 성과를 내는 팀을 이끌려면 리더가 이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행해야 한다. 리더는 팀의 성과를 저해하는 문제들을 비롯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팀이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내는 것은 리더가 높은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위해 팀원들이 협동하게 만들고, 여러 제약 조건을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만 가능하다. 팀 내에 극한의 오너십 문화가 배어 있으면 모든 팀원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확실하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그것이 문화든, 제품의 성능이나 경험이든, 채용과 관련된 문제든, 함께 일하는 방식이든 분야를 막론하고 챕터의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항이 발견되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변명하고 넘어갈 여지를 차단하니 결국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들이 쌓였다. 그 과제들을 해결해나갈 방법을 어떻게든 – 수많은 사람과 자료의 도움을 받아가며 –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성장이 있었다.

    맺으며

    며칠 전에는 회사에서 동료와 이런 대화를 했다.

    • 그 : “이 세상 어느 직군, 어느 조직에서든 모든 리더가 갖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뭔 줄 아시죠?”
    • 나 : “모르겠는데요. 뭔가요?”
    • 그 : “세상 모든 리더가 갖는 공통점은⋯ 그 사람을 따르는 팔로워들이 있다는 거죠.”

    결국 따라주는 사람이 없으면 리드도 없다.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리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챕터 구성원분들께 큰 감사와, 한 챕터 – 여러 의미에서 – 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마운 만큼, 비록 역할은 달라지지만 앞으로도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기를!

  • 어떤 동료와 일하고 싶으신가요

    일상 속 비전 제시, 고객 중심 사고.

    들어가며

    회사에서 피어 인터뷰(협업 관점에서 진행하는 다른 직군과의 인터뷰)에 들어가면 단골로 받는 질문이 있다. 바로

    어떤 [프로덕트 디자이너 / 백엔드 엔지니어 / 데브옵스 엔지니어 / 프로덕트 매니저] 와 일하고 싶으신가요?

    라는 질문이다. 해당 직군에 특화된 역량은 같은 직군 동료 분들이 더 잘 봐주실 거라 믿어서, 나는 여쭤보신 분의 직군에 따라 드리는 답이 크게 달라지는 편은 아니다. 협업하는 입장에서 공통적으로 바라는 점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일상 속 비전 제시

    첫째로 일상 속에서 팀에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비전은 분기 비전, 올해 비전 같은 각 잡고 문서와 함께 미리 그려보는 종류의 비전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일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와, 이렇게 [제품 / 팀 / 일하는 방식]이 바뀔 수 있겠구나! 이런 변화를 만들 수 있으면 너무 신나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미처 못 보았던 가능성을 보게 만들고 기대와 설렘을 심어주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 지금 대다수 사용자가 느끼는 어색함, 불편함을 이런 UX의 변화만으로 깔끔하게 풀어줄 수 있겠구나!
    • 이 작업의 성능이 이렇게까지 개선된다면 기존에는 성능 문제로 불가능했던 이러이러한 기능도 제공할 수 있겠다!
    • 우리 제품이 이렇게까지 예뻐질 수 있구나. 사용자가 사랑에 빠질 것 같다!
    • 지금은 우리가 A라는 문제를 풀고 있지만 이러이러한 단계를 거쳐서 B, C라는 맥락까지 확장해나가면 경험이 훨씬 자연스럽고 매끄러워지겠군!
    • 배포와 롤백이 이렇게까지 빠르고 편해지면 릴리즈가 지금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해지겠네!

    자신의 업무에 깊게 몰입하며 높은 기준을 견지하는 동료는 일상적인 업무 수행 중에 이런 순간을 자주 선사한다. 다음 단계로 발전된 모습을 함께 꿈꾸고 그걸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정, 협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다.

    고객 중심 사고

    둘째로 고객 중심 사고가 자리 잡은 사람이다.

    ‘고객 중심’ 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상당히 비직관적이고, 의도적인 단련이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특히 만드는 과정에 깊게 몰입하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그렇다. ‘내’가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에서 나 아닌 다른 이를 최종 결정권자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 당장 고객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하자. 코드의 완벽한 추상화를 깨트리며 이런 저런 장기적 문제가 예상되어 설령 나중에 일을 두 번 할 것이 뻔하더라도, 빠른 해결책부터 찾아 일단 내보내야 한다.
    • 디자이너 눈에 A안이 명백하게 우월한 시안이지만 테스트 결과 고객 대부분이 B안을 선호하고 잘 쓴다면? B안에 분명히 더 나은 무언가가 숨어있으니, 그걸 찾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데브옵스 입장에서는 찜찜한 구석 없이 이상적이지만, 개발자들이 쓰기엔 너무 불편한 파이프라인은 절대 잘 만든 파이프라인이라 할 수 없다. 개발자가 데브옵스의 고객이다.

    제품은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것이다. 가정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과정에서의 에고를 버리고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며 이뤄야 할 목표에 집중하는 팀이 그렇지 못한 팀보다 실제 문제를 더 잘, 빠르게 해결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맺으며

    글을 쓰며 일단 나 자신부터 충분히 고객 중심 사고를 가졌는지, 주변에 과연 비전을 제시하는 동료인지 또 한 번 돌아보고 반성했다. 좋은 동료의 길은 멀고도 험하도다…

  • 2022년 플렉스팀 프론트엔드 챕터 비전

    플렉스팀 프론트엔드 챕터의 작년을 돌아보고 올해를 내다봅니다.

    들어가며

    지난 목요일(2022년 1월 27일), 플렉스팀 프론트엔드 챕터는 지난 2021년을 돌아보고 2022년 이루고픈 목표를 공유하는 회고를 진행했습니다. 회고 자리를 갖기 전에 화두 삼으려 문서를 하나 작성해서 공유했는데, 플렉스팀에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 블로그에도 공개합니다.

    읽어보시고 이 한 해를 함께 하고 싶고 막 설레는 분, 또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신 분들, 언제라도 문을 두드려 주세요!


    비전

    • 사용자를 사랑에 빠트리는 제품
    • 개발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시스템
    •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팀

    돌아보기 : 2021년

    지난 한 해, 프론트엔드 챕터에 많은 조직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 2021년의 시작에 4명이던 구성원 수는 이제 14명까지 늘었습니다. (입사 예정자 포함)
    • 7번의 테크 톡, 77번의 ‘이번 주의 배움’ 공유를 진행했습니다.
    • 인터뷰 템플릿 작성, 코딩 과제 도입 및 온보딩 프로세스 문서화 등 신규 구성원 합류 과정을 개선했습니다.

    출시를 앞둔 2.0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품 역시 크게 발전했습니다.

    • 모든 스쿼드의 노력과 열정 덕에, 바닥부터 새로 만든 제품이 성공적으로 전격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 기존에 부재했던 다국어 및 여러 타임존 지원을 내재화, 글로벌 고객 수용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 새 디자인 시스템을 필두로 접근성, 키보드 내비게이션 등 기존에 미처 못 챙긴 부분까지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 빌드·배포가 어려웠던 거대한 하나의 앱을 여러 앱으로 쪼개 다가올 팀과 코드베이스의 확장에 대비했습니다.
    • API 연동, 에셋 업데이트 등 다양한 반복 작업의 자동화로 단순 작업에 소모되는 비용을 확 줄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진 부족한 점들도 많이 발견했습니다.

    • 이제 막 시작한 채용 및 온보딩 과정 고도화는 갈 길이 멉니다.
      • 채용은 아직까지 면접관 개개인의 역량에 많이 의존하며, 기존에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만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 온보딩 역시 시스템보다 버디로 지정된 한 명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더 큽니다.
    • 제품에도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 도전적인 일정 속 기능 전달에 초점을 맞추느라 구현을 미룬 기능과 놓친 사용자 경험이 남아있고, 인프라 단의 여러 앱 통합도 심리스하지 않습니다.
      • 다국어 및 여러 타임존을 지원할 준비는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사용례를 커버하려면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 작업자 수가 늘면서 디자인 시스템, 개발 환경 등 공통 영역에서의 부채도 점차 쌓이고 있습니다.
      • 아직까지 전담 인원 없이 십시일반으로 진행되어온 탓에, 다른 업무에 우선순위가 밀려 진행 속도가 더디거나 멈춰있는 영역이 많습니다.

    내다보기 : 2022년

    우리 팀 구성원 수와 우리 고객 수는 내년에도 빠르게 늘어날 것입니다. 2.0이라는 새로 깔아놓은 기반 덕에 그 속도는 지금까지 보다도 더 폭발적일 것입니다.

    다가올 한 해는 올해 발견한 아쉬운 점은 메꾸고, 깔아놓은 기반은 잘 활용함으로 팀과 제품의 폭발적인 성장을 잘 뒷받침할 웹 제품과 문화를 만드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

    먼저, 2022년에는 사용자를 사랑에 빠트리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낮은 장벽

    flex는 사용법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깊은 도메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모든 사용자를 성공의 구덩이에 빠트리는 제품이 될 것입니다.

    제품이 다루는 도메인이 어려울수록 만드는 이들이 사용자를 위해 경험에 집착해야 합니다. 내년에 우리 제품은 지금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워질 것입니다. 사용자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여지는 없애고, 작업을 쉽게 복구할 수단을 제공하여 사용하며 긴장할 일을 없앨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회사별 근태·결재·급여 등의 업무 방식 중 아직 flex가 잘 지원 못하는 용례가 많습니다. 어떤 조직이라도 그 조직을 위해 맞춤으로 만든 듯한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높은 접근성을 당연한 목표로 삼으며 다국어, 여러 타임존 지원의 완성도를 높여 누구나, 세계 어디에서나 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높은 기준

    낮아질 장벽과는 반대로, 제품 전반적으로 지금까지보다 높은 심미적·성능적 기준을 세워나갈 것입니다.

    써야하는 제품을 넘어, 계속 쓰고 싶은 제품이 되길 바랍니다. 정보를 받아오는 중에도, 오류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매끄럽고 유용한 경험을 제공할 것입니다. 올바른 동작 여부는 당연하고, 무엇이 감탄이 나오는 경험을 만드는지 챕터 내에서 활발히 논의하고 개선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사용자 경험에 직결되는 렌더링 성능, Web Vitals 등의 지표를 측정·개선하는 문화도 정착시키고 싶습니다. 성능 이슈에도 기능 버그와 동일한 민감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기기의 스펙·인터넷 연결 상태의 사용자 모두 고려하는 게 업무에 당연한 프로세스로 포함되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개발자 경험 (Developer Experience)

    다음으로, 2022년에는 개발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디자인 플랫폼

    첫 플랫폼 디자이너의 합류에 발맞춰 디자인 플랫폼을 전담하는 역할이 신설됩니다.

    FDS(Flex Design System)의 웹 구현체는 빠르게 개발자·사용자의 사용성을 개선하고 부족한 용례를 채워나가며 역으로 시스템의 발전에까지 영향을 줄 것입니다. Figma 플러그인 등을 활용해 디자이너—개발자 간 핸드오프 프로세스 역시 극적으로 개선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제품 전반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가이드와 장치를 마련해나갈 것입니다.

    개발 플랫폼 (가칭)

    공통으로 영향을 받는 개발 환경의 개선을 전담하는 역할도 생깁니다.

    현존하는 여러 문제 – 충분히 빠르지 않은 배포, 쾌적하지 않은 개발 환경, 오류 상황에서의 부족한 가시성 등 – 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갑니다. 어떻게 모두가 더 편하게 일할지, 더 자동화할 부분은 없을지 누구보다 먼저 고민하고 개선하여, 각 스쿼드의 개발자가 스쿼드의 목표 달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구성원 경험 (People Experience)

    마지막으로,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합류 이전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싶은, 함께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 경험 및 면접 결과가 면접관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지 않고 균일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챕터가 예비 구성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그러한 역량을 어떻게 확인할지 명확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이 시스템을 바탕으로, 관련 경험이 없던 구성원이라도 누구나 면접을 이끌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가치 있는 경험을 팀 내에서뿐만 아니라 기술 블로그, 오픈 소스 프로젝트, 발표 등의 형태로 바깥에 공유하며, 그로 인해 새로운 채용이 일어나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며 얻은 경험을 도움 받은 커뮤니티에 돌려주고, 그에 매력을 느껴 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합류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길 바랍니다.

    합류 이후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친절한 문서와 환경 설정, 학습과 적응을 위한 프로세스 등을 통해 신규 구성원이 팀과 사랑에 빠지는 온보딩을 만들 것입니다. 지원은 온보딩 후에도 이어질 것입니다. 구성원의 성장 – 어떠한 역할을 맡고 어떤 경험을 쌓고싶은지 – 고민할 때, 그 고민에 지속적으로 함께 참여하고 도와줄 이를 늘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조직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처음으로 제품 조직이 트라이브로 나뉘고, 트라이브 별 챕터 리드가 생기게 됩니다. 앞으로 구성원 수가 늘어나며 조직은 더 많이 나눠질테고, 각 조직마다의 방식으로 독립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충분히 신경쓰지 않는다면 조직 간 기술적·문화적 차이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통제가 아닌 맥락을 기반으로, 각 조직의 자율성을 지키되 한 챕터로서의 정체성과 공통의 가치는 지켜나갈 방법을 찾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주기적으로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시간, 공유하는 원칙에 대한 문서 작성 등 우리에게 맞는 적절한 장치를 찾고 개선해나가겠습니다.

    서로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되 최선의 결과물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서로 높은 기준을 요구하길 주저 않는 공동체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맺으며

    2022년에는 챕터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 낮은 장벽과 높은 기준을 통해 사용자를 사랑에 빠트리는 제품을,
    • 두 플랫폼 조직을 통해 개발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시스템을,
    • 합류 이전·이후 프로세스의 개선을 통한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팀을

    만들려 합니다. 함께 자라며 더 멋진 제품과 조직을 만들어갈 내년이 기대됩니다.

  • 2021년 11월 단상

    Unplugged, 성원권, 여름보단 겨울, 일의 재미, 결함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downwithyou

    Unplugged

    지난 주말엔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앱을 지웠다. 몇 달 전부터 의미없이 계속 피드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데서 오는 피로감과 허무함이 쌓인 상태긴 했다. 다만 결정적인 계기는 뒤늦게 돌아보니 한 영상이었다.

    지난 주말, 대전에 내려갔다. 애인 집 앞 색색으로 단풍 든 거리가 예뻐서 자전거를 타고 가며 머리 위를 영상으로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는데 용량이 너무 커서 그런지 색이 날아갔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회해보려다 계속 실패해서 ‘이 색이 아니라고!’ 하면서 성질이 나던 차였다.

    문득, ‘바로 나가면 단풍 든 거리도 그대로 있고, 나는 이미 그걸 눈에 다 담았는데 이 영상을 이 앱에 색이 안 날아가게 올릴 수 있고 없고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것 때문에 짜증을 내고 있나’ 싶어 어이가 없었다. 대전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돌아온 후인지 이제는 때가 되었다 싶어 앱을 다 지웠다.

    아예 계정을 지우거나 한 건 아니지만 앱이라도 없이 일주일 살아보니 만족스럽다. 언제 또 못 참고 깔지 모르고, 아낀 시간에 결국 유튜브나 슬랙 새로고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하나씩 해결해보는 걸로.

    성원권

    생존 이후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나, 또 다들 어떤 이유와 목표를 갖고 살아가나 따위의 고민이 느슨하게 이어지는 요즘이다. 『사람 또는 환대』 를 읽다 꽂힌 성원권(membership) 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계속 맴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태아, 노예, 군인, 그리고 사형수의 예는 사람의 개념에 내포된 인정의 차원을 드러낸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실종자의 예에서 보았듯이 특정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ㅡ동어반복적으로 들리겠지만ㅡ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회란 다름 아닌 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참 촘촘하게 나뉘어 있다. 결국 인간이 하는 행동 대부분이 내가 (또는 다른 누군가가) 어떠한 ‘우리’에 속할 자격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발버둥인가 싶다. 그렇다면 어떤 – 또 얼마나 많은 – ‘우리’에 속하며 속하길 희망하는지, 어떤 이를 환대하며 어떤 이를 밀어낼지가 삶의 큰 궤도를 설정할 것이다. 스스로 던져놓고 머리 속에서 굴려보는 질문.

    여름보단 겨울

    슬슬 공기가 차갑다.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나뭇잎 떨어지는 건 아쉽지만 눈 내린 장면만이 줄 수 있는 포근함과, 얼은 물로 덮인 풍경에서 따듯함을 느끼는 아이러니가 즐겁다. 축 늘어지는 더위보다도 역시 떨면서라도 좀 더 깨어 있게 만드는 추위를 고르겠다.

    고양이 때문에 종일 트는 보일러 덕에 난방비는 많이 나와도… 반갑다 겨울.

    일의 재미

    챕터 구성원 분과 1:1 미팅을 진행하다가 내가 요새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하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하고, 동시에 매일 진행하는 일상적인 업무가 재밌는지 아닌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에게 이런 것들이 일터에서의 만족도에 꽤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때가 짧지 않았던 터라, 무슨 변화가 있나 미팅 이후에 좀 생각을 해보았다.

    어느정도 내린 결론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지가 달라졌고 (프론트엔드 개발 → 함께 회사를 만들어나가는 일) 일의 재미를 정산하는 주기가 달라졌기 (일/주 단위 → 분기, 년 단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미있게 일하고 있고, 새롭게 정의된 재미가 유지되는 건 여전히 중요한 듯.

    결함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노 필터』 에는 인스타그램의 창업자인 케빈 시스트롬이 피렌체에서 사진 수업을 듣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교수가 시스트롬의 고급 카메라 대신 홀가라는 작은 카메라를 쓰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결함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나는 어릴 때 결함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게임 캐릭터를 키울 때면 스킬을 한 번이라도 잘못 찍는 순간 낙담해서 더 이상 키울 의욕을 잃곤 했다. 고등학생 때 목디스크 진단을 받고는 벌써부터 몸이 이러니 인생 망한 기분이 들어 크게 우울했던 기억도 있다.

    어떤 계기를 집어내긴 어렵지만 살아가며 서서히 결함을 사랑하는, 아니 사랑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재미를 찾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삶에서 멋진 점을 훨씬 많이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상이 완벽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면, 음정 박자 나간 노래에도 즐겁게 춤 출 수 있는 자의 삶이 더 풍요로울 것이다. 지금의 내가 좋다.

    downwithyou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들려줘 간만에 듣고 또 꽂혔다. 이센스의 노래는 내 삶의 각 시기마다 다르게 와닿는 게 신기하다.


    그래서 네 목푠 뭔데?
    지금 와선 잘 모르겠대 일단 돈이나 벌재
    그래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네 돈이 최고지
    다른 뜻 있어 한 말 아냐 돈이 최고지

    넉넉히 챙겨 놓고 생각해보자
    언제든지 엿 같아지면 바로 떠날 수 있게
    모아둔 것들 다 편도 티켓
    같은 돈이면 서울보다 몇 배 더 큰 집에서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서울보다는 훨씬 더 조용한 새벽
    물론 가끔은 잠이 없는 홍대 강남 이태원이 그립겠지만
    편한 잠을 얻을 것 같아서

    이건 딴 데 안 살아본 놈의 상상이지
    사실 아직까지 못 받아들인 몇 가지 때문에 그냥 하는 소리고
    난 여기서 끝장을 보긴 해야 해 Baby I'm down with you

    어 나 잘하고 있어 엄마
    어제 하룻밤 동안에 거의 2천만원 벌었어
    엄마 아들 생각보다 잘 나가
    내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말했었잖아

    서른즘에 짬밥 얘기하고
    내 어릴 때 생각대로 그딴 건 의미 없었네
    소신은 선택이고 성공은 좀 다른 문제
    냉정히 봐서 안 흔들린 적 없던 믿음

    그래도 기본이 없는 새끼는 곧 무너져
    그러니 할거 해
    너무 많은 얘길 듣는 것도 좋지 않아
    내 계획에 대해 의심을 걔네보다 많이 한 건 나였었는데
    해냈네

    가만히 앉아 영원하길 바랄 순 없지
    뱉어놓은 말은 무거워져 가만 놔두면
    아들 어떻게 되든 간에 겸손해라
    엄마 근데 요즘은 겸손한 게 더 손해야

    Yeah 멋진 일이지 Rapper들이 갖고 가는 rap money
    Dok2가 열여섯 때부터 말해온거지
    스물한 살 때 내 공연 페이는 돼지고기
    이젠 다른 데다 다른 것들을 채워 넣지

    2001년 타이거 J said Good Life
    그때 그가 말한 그 삶은 어떤 거 였을까
    난 지금 설레임의 정도와 종류 그 둘 다 달라져 있어

    그런데 심야가 뱉는 말은 날 같은 듯 다른 델 데려가
    얜 최고야
    누구보다 기대해 이 새끼의 career high
    우린 어쩌면 다 비슷한 말을 하는 건가
    Love is not enough 혹은 사랑이 모든 것

    완벽한 건 아직 못 본 거 같아
    내가 쫓던 것 중에 몇 개는 얻었어
    뭘 더 보게 될지 난 그 여자가 보고 싶군
    이런 얘긴 그냥 딴 데다 치워 놓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