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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 Tribe PM 리드 회고
지난 6개월 간 트라이브 PM 리드 역할에서 배우고 느낀 점들.
2023년 7월, 제품 팀 내에서 Vision Tribe라는 조직의 PM 리드 역할을 맡게 되었다.
Product Manager로의 직무 전환 후 1년이 채 되기 전이라 잘 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조직’이라는 정체성에 내가 기여할 부분은 있어 보이고, 역량이 될지는 팀에서 잘 판단해주리라 믿고 자원했다. 고맙게도 회사에서 맡겨줘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다.
2024년 2월, Vision Tribe는 Platform Division이라는 보다 메이커 중심의 조직으로 변경되었다. 조직의 정체성 변경에 따라 나를 포함, 대부분의 PM은 타 조직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자연스레 짧은 리드 역할도 마무리되었다.
조직 변경 자체는 전체 제품 팀 차원의 여러 맥락이 섞여 일어났다. 이러나 저러나 이를 기회 삼아 지난 반 년을 돌아보니 그간 자신에 대해 발견한 부족한 점, 배운 것들, 더 잘 할 수 있었던 부분이 많다. 잊지 않고 싶은 내용 위주로 글로 남겨본다.
같은 회사, 다른 경험
지난 6개월 간 가장 지속적으로 강렬하게 체감한 감각은 바로 ‘분명 3년 넘게 다녀온 회사인데, 전혀 다른 회사를 다니는 기분이다’ 였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먼저 고민의 종류가 달랐다.
내가 익숙한 고민의 주제는 주로 제품/고객에 관련되어 있다. 리드를 하면서는 사람 및 조직 관련 고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다. 물론 PM으로 일하면서도 유사한 상황은 생기지만, 작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많은 경우 문제가 되는 사람 또는 조직과 나 사이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상적 상호작용이 전무하고, 때문에 라포 및 이해도가 부족한 상태라는 점이다.
그나마 익숙한 제품 관련 영역 고민도 기존과는 꽤나 다른 모양이었다. 특히 ‘어떻게’ 이전의 ‘무엇을’, ‘언제, 어떤 순서로’, ‘왜’를 큰 조직 단위에서 잡아나가는 과정이 도전적이었다. 문제는 많은데 대부분 정해진 답이 없었다.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법,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길들이는 법,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법 등을 배웠다.
고민의 강도 또한 달랐다.
그간 역량 면에서는 본인의 부족한 점에 남들보다 스스로 더 민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역량과 별개로 업무 몰입도, 노력 등 태도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당당하게 ‘부족하지 않다, 100%를 부어 왔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 생각이 보기 좋게 깨지는 시간이었다. 상황이 요구하니 그간 부어온 것 대비 훨씬 높은 수준의 헌신이 가능했다. 조직 개편이 확정되고 난 주말에 문득 ‘월요일까지 준비해가야 할 게 없는 주말이 얼마만인가’ 깨닫고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 4년 간 함께한 동료들과 ‘우리 같이 고생했다’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시간은 나의 그것과 전혀 다른 모습, 다른 밀도였겠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왠지 부끄러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가져야 할 기대치의 기준값을 조정할 수 있었다.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를 자주 되뇌이며, 익숙함을 버리고 ‘there’에서 요구되는 무언가를 부여잡으려 발버둥쳤다.
판단 대신 호기심
PM 리드를 하면서 들었던 조언 중 가장 귀중한, 동시에 구현에 가장 크게 실패한 조언은 아래 문장일 것 같다. (심지어 구체적인 문구는 달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분들께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희종님, 사람의 마음을 사면서 일할 줄 알아야 돼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정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답에 가까운 행동들은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상대를 진심으로 알려는 마음과 태도 없이 쉽게 판단하고 내가 바라는 대로 끌어가려는 모습 아닐까.
『테드 래소』의 한 에피소드 속 다트 경기 장면에서는 “판단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라(Be curious, not judgmental)”라는 인용구가 소개된다. 스토리와 캐릭터에 기가 막히게 녹아드는 문구여서 정말 인상적이었다. 처음 보고 ‘꼭 저렇게 살아야겠다‘ 싶은 마음에 어딘가에 메모해 뒀던 기억이 든다.
지난 반 년을 돌아보니, 해당 인용구를 진정으로 받아들였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의 순간이 여럿 떠올라 입맛이 쓰다.
내가 지금껏 일해온 환경과 그 환경에서 정의하는 일 잘 하는 방식은 꽤나 균일했다. 반면 우리 조직 내에는 지금까지 나와 다른 환경을 겪고, 다른 식으로 일하고, 다른 강점과 생각을 가진 동료가 많았다.
그들과 상호작용 하며 서로의 차이에 대해 깨닫는 과정에서, 특히 초반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하거나 솔직히 일견 답답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상대 입장을 들어보니 그들도 비슷한 감정들을 느꼈음을 듣고 재밌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올바른 렌즈는 섣부른 판단이 아닌 솔직한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그간 내 경험이 좁고 다양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겸손한 자세로 보고 듣고 말했다면… 더 빠르게, 더 잘 서로를 이해하고 결과적으로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사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잡지 못한 미숙함이 아쉽다.
인간인지라 앞으로도 같은 함정에 자주 빠질지 모르지만, 한 번 배웠으니 앞으로는 더 조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만 대신 겸손. 판단 대신 호기심.
앎과 삶
회고를 적어보며 알게 된 재밌는 지점은, 위에 적었듯 다양한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체감한 내용이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전략과 비전과 미션에 대해. 사람의 마음과 설득에 대해. 얼라인과 리더십과 코칭과 매니징에 대해. 얼마나 많은 블로그 글, 책, 영상, 강연을 들었던가. 기본적으로 정보 습득 행위를 즐기며 일이 생활의 큰 축을 차지하는 터라, PM 리드 역할은 커녕 PM 직군도 아니던 시절부터도 관련된 리소스를 찾아 읽는 건 내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럼에도 남의 말과 글을 통해 머리로 이해하고 외우고 상상하는 것과 진흙탕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고민하고, 감각하고, 적용하고, 틀리고 그 결과를 느끼고, 그럼에도 결국 한 뼘씩 나아가는 그 과정을 체험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PM 리드 역할을 맡아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너무 다행이라 생각한다. 힘듦과 부끄러움이 함께 했지만, 그 과정에서 체득한 것들은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회사는 계속 성장할 거고,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나타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런 기회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두려움과 기대가 싸울 때는 과감하게 자신을 편안한 영역 바깥으로 던져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앎이 아닌 삶을 통해 쌓이는 배움이 많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뉴스룸』의 첫 에피소드에서 윌 매커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지난 6개월이 나에게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딱 하나만 꼽아본다면 무엇보다 그간 내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도 눈 가리고 있던) 동료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부족한 지점들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는 점일 것 같다. 다양한 관점에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문제에 부딛히고, 해결을 고민하며 겸손해질 수 있었다.
단순히 일을 더 잘 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만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힌트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과정에서 친절한 마음을 담아 – 솔직한 피드백이든, 심심한 위로든, 무조건적 지지든, 고민 상담이든 – 각자의 방식으로 성심성의껏 도와주신 수많은 이들, 또 이러한 기회를 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느끼고 배운 걸 흘려보내지 말고 더 나은 동료,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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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하는 마음으로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함께 하나의 소리 되어.
대학 시절, 합창 동아리에 들었다. 보다 정확히는 들고 보니 합창도 하는 통기타 동아리였다. 「씨스루」 와 「금요일에 만나요」 새터 공연을 보고 ‘멋진 공연 하는 곳이구나’ 싶은 마음에 반해서 가입했는데, 합창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학기마다 정기 공연을 했다. 정기 공연 ‘엔딩’으로는 항상 40명 넘는 동아리원이 함께 서서 노래를 불렀다.
첫 학기인 13년도 봄 엔딩곡은 푸른하늘의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속에 묻어둔 채」 였다. 난생 처음 듣는 노래였다. 연습 첫날은 시작 전에 다 같이 앉아서 노래를 듣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잔잔한데 좀 지루하지 않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합창 연습은 힘들었다. 한 달가량 지하 동방에서 매일 밤 9시에 만나 몇 시간씩 연습한다. 각 파트가 나뉘어서 연습은 해야 하니 우리 파트는 지하 계단실로 나가는 날이 많았다. 울림을 더해주어서 우리는 ‘용기의 방’이라고 불렀다. 박자나 음정이 조금만 틀어져도 바로 지적이 들어왔다. 몇 시간 연습 끝에 고작 한 소절 나아가는 날도, 몇 소절 내내 다른 파트를 위한 화음 역할만 (“우– 우– 우––”)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음악을 찾아듣기만 했지, 노래를 잘 부르지도 부르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동아리에서 깨달았는데, 확실히 음감이라는 게 없었다. 베이스 파트장 형이 ‘지금 반 음 떨어졌다’고 할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두 개를 비교해서 들으면 뭐가 더 낮은지는 알겠는데 ‘그러니까 맞는 음으로 혼자 불러보라’고 하면 아까랑 똑같이 틀린 소리가 났다.
하지만 함께 부를 때는 옆 사람이 내주는 ‘맞는 음’을 따라갈 수 있었다. 모든 파트가 함께 모여서 맞춰서 연습해 보니 전체 노래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모두가 모여서 전체 곡을 불렀을 때 온몸이 짜릿했다. 수십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흐르고 내가 그 일부로 속한 기분은 느껴보지 못한 이에게 말로 설명하기 불가능하다.
힘들고 어찌 보면 지루한 연습 과정을 겪으며 빠르게 동아리에서 이탈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편 첫 봄 정기 공연이 끝나고 나는 동아리에 완전히 빠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합창의 경험이 나에겐 가장 강렬했다.
동아리의 ‘메인’에 해당하는 2학년 때는 추가로 공연마다 메인 중창 공연을 했다. 중창이나 합창할 때는 항상 연습과 공연을 이끌어가는 ‘지도’ 역할이 존재한다. 가을 메인 중창 때는 내가 지도를 맡았다.
도저히 내가 왜, 어떻게 지도를 맡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악보를 볼 줄도 모르고, 편곡도 못 한다. 각각을 나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들이 우리 학번에 여럿 있었고,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우리 메인 중창을 대차게 말아먹었을 걸.
메인 중창 연습은 엔딩 연습이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 새벽부터 몇 시간 연습하고, 그날의 회의를 마치고 (대체 무슨 안건이 있다고 그렇게 매일 회의를 했을까?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친구의 스쿠터나 택시를 타고 유성온천 근처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나오면 날이 슬슬 밝아질 무렵이고, 그제야 기숙사에 들어가 잠드는 게 우리 루틴이었다.
매일 일반적인 회사원의 근무 시간만큼을 함께 보내며 감정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버거운 상황도 잦았다. 잘 기억도 안 나는 이유들로 싸우고 화해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삶에서 가장 살아 있고 행복했던 시기들 중 하나였다.
우리는 메인 중창을 대차게 말아먹지 않았다. 사실 너무 잘했다.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났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영상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로 그 시절은 나에게 한 때의 추억이었다. 소중하지만 이미 지나간 “눈이 부시게 빛나던 날들”.
가끔 생각나면 유튜브에서 공연 실황을 보면서 따라 부르고 감상에 잠기다 결국 이제 내 삶이 그 시절과 얼마나 멀어졌는지 새삼 되새기곤 했다.
며칠 전도 그런 날이었다. 동아리에서 만난 배우자와 함께 합창 영상을 보며 그 길고 고통스럽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다 잠들고, 다음 날 깨어났는데 문득…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 배움, 갈등, 화해, 성공과 실패, 희열, 좌절, 추억. 그 모든 게 합창하던 그 시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 최근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긴다. 합창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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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하루, 달콤한 집
결혼에 부쳐.
저는 가끔, 아니 가끔보단 조금 더 자주, 내가 한심합니다.
세탁 태그를 제대로 확인 안 해 아끼는 옷의 색이 날아가고 목이 늘어납니다. 가벼운 말로 주변 사람을 상처입히곤, 어설픈 사과로 용서받은 뒤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숙취로 웅웅대는 머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일어나, 어제는 왜 그렇게 들떠서 안 해도 되는 말을 했나 이불을 걷어찹니다. 한 번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직접 맡은 일을 감당 못 하고 휩쓸리며 허우적댑니다.
성실하게 찾아오는 내가 한심한 날을 누구나 그런다 웃어 넘기기도,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날씨로 씻어내리기도 하지만…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자책과 우울이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날들도 있습니다.
시간을 돌려서 다르게 행동하고 싶고, 세상에서 감춰지고 싶고, 잘 해낼 자신이 없을 바엔 망신당하기 전에 차라리 일찌감치 포기하고 싶은 날. 나만큼 별로인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떨쳐낼 수 없는 날이면 유독 하루가 길지만, 그런 긴 하루도 결국엔 끝이 납니다.
하루 끝엔 집이 기다립니다.
혼자 살 때는 집에 돌아오면 어찌할 바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못다 끝낸 업무가 남은 회사 메신저를 유령처럼 떠돌거나,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머리를 쳐박곤 생각의 스위치를 끄려 노력했습니다. 또 한 번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못남에서 눈을 돌리려 애쓰다 잠에 들었습니다.
그런 날이 반복되던 중 2020년 여름, 같이 사는 생명이 둘 생겼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입니다. 봄에 태어난 형제 고양이라 봄나물 이름을 따 봄동과 달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식구는 루틴을 달고 옵니다. 어떤 하루를 보냈든, 집에 돌아오면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사료를 채워주고 물 그릇을 갈아줍니다.
그로부터 조금 후에는 사람도 한 명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하진입니다. 고양이를 데려온다면 내가 잘 기를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넌 잘 할 거라고 응원해주고, 봄동과 달래라는 이름도 직접 지어줬습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나 8년이 넘게 동안 함께 했고, 아마도 저의 못난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많이 봐 온 사람입니다.
식구가 늘면서 루틴도 늘었습니다. 이제 하루가 끝나고 돌아온 집에서 우리는:
고양이와 놀아주고 이를 닦아주며, 오늘의 기쁘고 슬픈 일을 나누면서, 서로의 빨래를 개고 서로 요리해주며, 틀어놓은 음악을 따라 부르고 이상한 춤을 추며, 드라마와 영화를 함께 보다가, 결국엔 한 침대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두서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들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런 지가 벌써 일 년 반이네요.
그런 루틴, 하진과 고양이, 그리고 어쩌면 나까지를 돌보는 일을 통해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도, 제가 소위 말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현관문을 넘을 때 달고 들어왔던 무겁기 짝이 없던 좌절이 어느덧 훅 털면 날아갈 먼지처럼 가벼워져 있습니다. ‘못 하겠다’, ‘할 수 있을까’ 가 ‘해볼 만 하다’, ‘해 봐야지’로 바뀐달까요. 신기한 일이지요.
그런 신기함을 새삼 깨달을 때면 함께 살아서, 집에 혼자가 아니어서 참 좋다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면서 맞이할 매일에 점수를 매겨본다면, 오늘은 100점에 가까울 겁니다. 바쁜 주말이자 휴가철인 오늘, 더운 날씨에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감사히도 자리를 빛내 주셨고요. 아끼는 사람과 새로운 관계로 출발하는 날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오늘만 못하겠지요. 50점, 60점이면 다행이고 0점짜리 하루도 많을 겁니다. 아무리 애쓴들 내가 싫어지는 상황은 예방할 수 없을테고, 서로가 서로의 하루를 더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하루가, 또 하진의 하루가 몇 점 짜리였든. 그 하루의 끝에 우리는 결국 서로가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집에서 아끼는 마음을 나누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며 또 다음 날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아무리 씁쓸한 하루였더라도,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 한 꼬집 달콤함을 섞어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또 앞으로도 오래 동안 그러겠다는 다짐을 오늘 결혼이라는 예식을 통해 많은 분들 앞에 선언할 수 있어서 기쁘고 설레며 감사합니다.
하객 여러분, 결혼식을 도와준 주헌, 강용희 목사님, 가빈, 찬우. 그리고 장인 장모님,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잘 살아보겠습니다.
하진. 고맙고 잘 부탁해. 부부가 되어서도 지지고 볶으면서 즐겁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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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섬길테냐
무신론 같은 건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이것은 물이다 This is water」 졸업 연설문을 종종 다시금 찾아본다. 그중 끝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유독 마음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직접 번역, “worship”을 “섬기다”로 옮김)
아주 이상하지만 사실인데, 다 큰 사람의 전쟁 같은 매일 속에서 무신론 같은 건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섬기지 않는다는 건 없어요. 모두가 무언가를 섬깁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을 섬길지 뿐입니다. 그리고 – 그게 예수든, 알라든, 여호와나 위카, 사성제 내지는 어떤 성스러운 윤리적 원칙들이든 – 일종의 신 내지는 영적인 무언가를 섬기는 건 꽤 그럴싸한 결정이에요. 그 외의 무언가를 섬긴다면, 대부분의 경우 섬김의 대상이 당신을 산 채로 집어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과 사물을 섬긴다면, 그것들이 당신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대상이라면, 영원히 충분히 가졌다고 느끼지 못할 거에요. 이건 진실입니다. 당신의 몸과 아름다움, 성적 매력을 섬긴다면 항상 스스로 못생겼다 느끼겠지요. 시간이 흐르고 나이 듦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실제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백만 번도 더 넘게 죽는 기분일 겁니다. 일견,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요. 신화, 잠언, 클리셰, 경구, 우화 등 모든 위대한 이야기의 원형에 담겨 있지요. 중요한 건 이 진실을 매일 의식적으로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권력을 섬기는 자는 항상 약하고 두려움을 느낄 것이며, 자신의 두려움을 누르고자 항상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권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자신의 지능과 똑똑해 보이는 일을 섬긴다면, 언제나 속으로 멍청한 사기꾼같이 느끼며 누군가가 내 진짜 모습을 알아차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겠죠. 이러한 숭배의 대상들이 교활한 점은, 악하거나 죄악이기 때문이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이것들은 사람의 기본 설정값이에요.
무신론은 없다. 섬기지 않는 게 아니라, 무의식 속 내린 선택에 무지한 것뿐이다. 그 말을 듣고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이들을 둘러보면, 진정 그러하다. 다들 무언가를 섬기며 살고 있다. 그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는 자도, 그러지 못한 듯 보이는 자도 있다.
나 역시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가족과 가족 될 이, 건강과 보기 좋은 몸, 직업적 성취, 고양이 두 마리, 영화·책·게임·음악, 효율, 산책, 돈과 더 많은 돈, 계절을 느끼는 일, 블로그 포스팅, 친구, 여행, 새로운 경험, 자유로움, 친구보다 먼 지인, 안정감, 음식과 커피, 술… 그 대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간다.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에서:
다 지나간 지금, 자네는 사실 삶으로 대답했네.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그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다른 듯 실은 같은 질문이 대롱거린다. ‘너는 무엇을 섬기며 살고 있느냐?’, 그리고, ‘섬기지 않는 선택지가 없음을 인정한다면, 무엇을 섬길테냐?’
「이것은 물이다 This is water」 전체 연설문을 원문을 가장 덜 생략하고 의미가 맞게 옮겨진 듯한 번역문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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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직장
“플렉스팀이 제 마지막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플렉스팀이 제 마지막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요즘은 지인들과 얘기하다보면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정확히는 누군가 일궈놓은 직장에 또다시 ‘입사’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니 “마지막 입사” 내지는 “마지막 피고용”이 더 적절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직장”이라는 표현이 주는 느낌이 더 마음에 든다.
보통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게 될 때 글로 남기는 편이다. 이 이야기도 몇 번 하다보니 블로그에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 팀이 내 마지막 직장이 될 거라 생각할까.
존경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어서? 충분히 크고 중요하며 개인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문제를 풀고 있어서? 초기 멤버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우여곡절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왔고 앞으로 훨씬 성공할 회사라서? 많은 실패와 삽질의 순간마다 그로부터 배워 더 나은 전략, 일하는 방식, 문화를 찾는 과정을 함께하며 쌓인 신뢰 때문에? “이런 게 되면 정말 멋지겠다” 대화만 여러 번 나누고 구현해내지 못한 주제들이 현실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모두 맞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을 다 합치면 자연스레 ‘이 팀이 내 마지막 직장’ 이라는 결론이 도출될까? “Muss es sein?”
그렇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류의 결정에 어떠한 필연적인 이유를 찾으려는 건 불가능의 시도일지 모른다.
솔직한 답은 – 삶의 많은 중요한 결정들이 그랬듯 – ‘그러고 싶다’, ‘그냥 그러기로 마음 먹었다‘ 이상일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수많은 좋은 이유들이 있고, 그 이유들의 총합보다는 조금 더 큰 (결론 아닌) 결심이 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결심에도 불구하고 삶은 불확실하며 짧은 듯 길다. 평생을 몸 담지 않는다면 떠나는 순간은 올 터이다. 언제가 될까?
사실 잘 모르겠다. ‘이 회사 다음’에 대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지가 벌써 좀 되었다. ‘이 회사’에서도 풀어야 할 문제가 – 생각만으로 아찔할 정도로 – 많을 뿐더러, 하나 하나가 거기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덤벼도 쉽지 않은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다본다면:
OpenAI CEO Sam Altman 은 “Sam Altman on Choosing Projects, Creating Value, and Finding Purpose” 팟캐스트에서 이런 말을 한다. (26분 16초)
저는 미루어둔 인생 계획을 믿지 않아요. 실리콘 밸리에서 한 때 유망한 미래를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다음 문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죠. 내 인생의 목적은 로켓을 만드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다음 3, 4년을 써서 크립토 헷지 펀드를 만들고 암호 화폐 거래를 통해 10억 달러를 모을거야. 그렇게 돈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상태가 되고 나면, 그 때서야 로켓을 만들거야. 그들은 로켓 만들기와 10억 달러 모으기, 둘 다 제대로 하지 못 해요. I don’t believe on the deferred life plan. A common criticism of people in Silicon Valley, who I think have great futures in their past, are people who say some version of the following sentence. My life’s work is to build rockets, so what I’m going to do is spend, I’m going to make a hundred million dollars in the next three, maybe they say four, in the next four years, trading crypto currency with my crypto hedge fund, because I don’t want to think about the money problem anymore, and then I’m going to build rockets. They never do either.
언젠가 이 회사 바깥에서 내 시간을 대부분 점유해 마땅한 주제를 찾는다면. 그리고 이 회사 안에서는 그 주제로 향하는 길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이유로든 플렉스팀에서 일하는 매일이 마음 속에 미루어둔 인생 계획을 품고 보내는 시간처럼 느껴진다면. 그 때가 떠나는 때가 되지 않을까.
그 전까지는 마지막 직장에서의 시간을 후회 없이 만들어가는 데에만 집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