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아이디어, 아쉬운 설득력 – 『룬샷』

흥미로운 아이디어, 아쉬운 설득력 – 『룬샷』

도서

『룬샷』은 – 표지의 문구를 빌리자면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비밀 소스(“부시–베일 법칙”)는 다음과 같다.

상(phase)분리: 룬샷(‘미래 먹거리’, 미친 아이디어, 혁신적인 제품) 부서 담당 “예술가” 조직과 프랜차이즈 부서(‘지금의 먹거리‘, 발견한 성공 방정식의 효율적인 발전 및 재생산) 담당 “병사” 조직을 분리한다. 자율적인 연구 조직과 엄격한 규율의 군대, 또는 실험적인 새 영화를 제작하는 팀과 이미 성공한 시리즈의 속편을 제작하는 팀처럼. 동적 평형: 예술가와 병사 중 한 쪽만 편애하거나, 한 쪽이 다른 쪽을 위해 희생한다는 기분이 드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또한 두 조직 간에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흐르는 환경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그 일을 주 업무로 삼는 ‘프로젝트 수호자’를 임명한다. 시스템적 사고: 결과주의적 사고가 아닌 시스템적 사고를 한다. 하나하나의 결정이 아닌 각 결정을 내리게 만든 구조,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고민과 개선에 집중한다. 매직 넘버: 조직 내 정치를 유발하는 잘못된 인센티브는 줄인다. 구성원이 승진보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바라게 만드는 조직 구조를 도입한다. 동료들의 압박과 인정, 내적인 동기부여, 적당한 난이도의 프로젝트 등을 재료로 사용한다. 최고 인센티브 책임자 선임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읽어 나가며, 여러 회사에서 겪은 좋고 나쁜 경험들에 빗대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구절이 꽤 있었다. 또한 저자가 소개하는 물리학의 여러 개념(상전이, 동적 평형, 창발성, 멱법칙, 등)과 이론의 발견 과정,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의 내용은 평소에 관심이 크지 않은 주제임에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2부의 초반을 가장 몰입해서 읽은 이유도 그런 이유였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찝찝했는데, 가장 골자가 되는 논리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크게 성공한, 또는 크게 성공하다 크게 실패한 몇 가지 기업·조직의 사례를 제시한다. 이어서 그 사례를 공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해석을 제시한 뒤, 곧바로 그러므로(?) 이 이론이 곧 위대한 성공을 재생산할 해답이자 앞선 모든 성공과 실패를 설명한다는 식으로 논리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전개를 납득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현상을 잘 설명하듯 보이는 가설 후엔 그 정당성을 입증할 실험(또는 방법)을 설계하고 실제로 확인하는 과정이 응당 따라야 할텐데, 이 책엔 그 과정이 없다. 이미 벌어진 일, 입맛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역사적 재료로 펼친 결과론 뿐이다. 어떤 조직 구조에서도 150이라는 매직 넘버가 자신의 “공식”으로 도출됨을 보여주는 부분에선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물론 조직에 대한 문제는 화학 반응이나 물리 현상처럼 실험실에서 재현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두 세 번에 걸쳐 기존의 통계적인 접근을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은 아직 입증의 책임이 한참 남은 주장을 마치 합의가 이루어진 법칙인 양 (‘우리는 앞에서 ~임을 알아보았다…’) 이어지는 서술이 거슬려 집중이 자꾸 깨졌다. 주춧돌이 기둥을 제대로 못 받쳐 흔들리는 건물에서 바둑을 두는 느낌이었다.

생각 해 볼만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분야에 걸친 과학적 지식, 역사적 사례를 담았음에도 다소 안이한 논리 전개로 인해 설득되기 어려운, 아쉬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