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직장

“플렉스팀이 제 마지막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플렉스팀이 제 마지막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요즘은 지인들과 얘기하다보면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정확히는 누군가 일궈놓은 직장에 또다시 ‘입사’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니 “마지막 입사” 내지는 “마지막 피고용”이 더 적절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직장”이라는 표현이 주는 느낌이 더 마음에 든다.

보통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게 될 때 글로 남기는 편이다. 이 이야기도 몇 번 하다보니 블로그에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 팀이 내 마지막 직장이 될 거라 생각할까.

존경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어서? 충분히 크고 중요하며 개인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문제를 풀고 있어서? 초기 멤버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우여곡절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왔고 앞으로 훨씬 성공할 회사라서? 많은 실패와 삽질의 순간마다 그로부터 배워 더 나은 전략, 일하는 방식, 문화를 찾는 과정을 함께하며 쌓인 신뢰 때문에? “이런 게 되면 정말 멋지겠다” 대화만 여러 번 나누고 구현해내지 못한 주제들이 현실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모두 맞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을 다 합치면 자연스레 ‘이 팀이 내 마지막 직장’ 이라는 결론이 도출될까? “Muss es sein?”

그렇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류의 결정에 어떠한 필연적인 이유를 찾으려는 건 불가능의 시도일지 모른다.

솔직한 답은 – 삶의 많은 중요한 결정들이 그랬듯 – ‘그러고 싶다’, ‘그냥 그러기로 마음 먹었다‘ 이상일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수많은 좋은 이유들이 있고, 그 이유들의 총합보다는 조금 더 큰 (결론 아닌) 결심이 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결심에도 불구하고 삶은 불확실하며 짧은 듯 길다. 평생을 몸 담지 않는다면 떠나는 순간은 올 터이다. 언제가 될까?

사실 잘 모르겠다. ‘이 회사 다음’에 대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지가 벌써 좀 되었다. ‘이 회사’에서도 풀어야 할 문제가 – 생각만으로 아찔할 정도로 – 많을 뿐더러, 하나 하나가 거기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덤벼도 쉽지 않은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다본다면:

OpenAI CEO Sam Altman 은 “Sam Altman on Choosing Projects, Creating Value, and Finding Purpose” 팟캐스트에서 이런 말을 한다. (26분 16초)

저는 미루어둔 인생 계획을 믿지 않아요. 실리콘 밸리에서 한 때 유망한 미래를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다음 문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죠. 내 인생의 목적은 로켓을 만드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다음 3, 4년을 써서 크립토 헷지 펀드를 만들고 암호 화폐 거래를 통해 10억 달러를 모을거야. 그렇게 돈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상태가 되고 나면, 그 때서야 로켓을 만들거야. 그들은 로켓 만들기와 10억 달러 모으기, 둘 다 제대로 하지 못 해요. I don’t believe on the deferred life plan. A common criticism of people in Silicon Valley, who I think have great futures in their past, are people who say some version of the following sentence. My life’s work is to build rockets, so what I’m going to do is spend, I’m going to make a hundred million dollars in the next three, maybe they say four, in the next four years, trading crypto currency with my crypto hedge fund, because I don’t want to think about the money problem anymore, and then I’m going to build rockets. They never do either.

언젠가 이 회사 바깥에서 내 시간을 대부분 점유해 마땅한 주제를 찾는다면. 그리고 이 회사 안에서는 그 주제로 향하는 길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이유로든 플렉스팀에서 일하는 매일이 마음 속에 미루어둔 인생 계획을 품고 보내는 시간처럼 느껴진다면. 그 때가 떠나는 때가 되지 않을까.

그 전까지는 마지막 직장에서의 시간을 후회 없이 만들어가는 데에만 집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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